7년차 기자의 '밥벌이 노하우' [슬기로운 기자생활]

권지담 2021. 11. 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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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슬기로운 기자생활] 권지담|사회정책팀 기자

“선배는 기자가 된 걸 후회한 적 없으세요?”

수습 3주째를 맞은 후배 기자가 내게 물었다. 3초간 멈칫했다. 예상 질문 리스트에 있는 질문들에 나름 잘 대답하고 있던 터였다.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 아니지만, <한겨레>에서 처음 만난 멘티라서 그랬는지, 수습 기간 3주를 버틴 후 풀이 죽어 있던 후배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건지 “후회한 적 없다”는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의 20대는 ‘기자의 정석’을 깨치는 시간이었다.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했고, 취업에 유리하다는 경제학이나 경영학 대신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다. 인문학 토론 동아리에 들었고, <대학내일> 잡지 학생리포터로 처음 대외활동을 경험했다. 생애 첫 인턴과 마지막 인턴 기간을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보냈다. 이후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언론고시(대학가에서 언론사 입사 시험을 이르는 말)반에 들어갔고, 1년 뒤 기자가 됐다.

구구절절 기자가 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과정들이 기자 생활 하는 데 톡톡한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잡지사와 신문사, 방송사에서 일하는 선배 기자들을 보다 보니 기자란 직업에 대한 선망이나 막연한 환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로 다른 동기들과 견줘 크게 기자란 직업에 실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시간도 놀랍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은 ‘발제 스트레스’였다. 온종일 취재해 기사를 다 작성하고 난 뒤엔 곧장 다음날 무엇을 쓸지 고민해야 했다. 인턴이나 수습 기간 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들이었다. 특히 주말이나 휴가가 끝난 다음 발젯거리를 찾는 일은 배로 힘들었다. 휴일에 취재하기 어렵고 쉬는 동안 놓쳤던 뉴스 흐름을 곧장 따라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발제 안 하면 기자가 아니다”, “솔직히 단독기사보단 매일 지면에 실릴 기사를 발제해주는 후배가 더 예쁘다”는 선배들의 말을 들을 때면 기자란 발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곤 했다. 비상상황을 대비해 야금야금 쌓아뒀던 취재 곳간마저 텅 비는 날엔 조급함에 발을 동동 구르거나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했다. 그럴 땐 내가 담당하는 분야의 기사를 찾아보거나 취재 요청서가 오는 메일함을 뒤져봤는데,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전화하는 것이었다. 언론사에서 인턴을 할 때 주위에 “제보 들어온 것 없냐”고 묻거나 “요즘 재밌는 일이나 힘든 일 없냐”고 묻는 기자 선배들 어깨너머로 터득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실제로 기삿거리가 없을 때 가깝게는 가족부터 친구, 평소 친하게 연락했던 취재원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기삿거리가 생기곤 했다.

얼마 전 썼던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 기획’은 이 노하우를 발휘한 대표적인 기사다. 코로나19 접종률이 7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미접종자 20명을 찾는 일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처럼 막막했다. 인터넷 카페나 에스엔에스(SNS)에서 찾아볼까 고민하던 중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미접종자가 많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자주 가는 미용실과 카페 사장님, 가족, 친구, 남편의 지인, 전 직장 동료, 연락이 뜸했던 취재원까지 시선을 돌리고 귀를 열자 몰랐던 미접종자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기삿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뻔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계기였다.

돌이켜보면 기자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도 결국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사소한 변화를 만든 기사가 보도됐을 때다. 임신부인 사촌 언니가 기사로 제도가 바뀌어 전기료 할인을 받게 됐다거나, 학내 성폭력 문제로 힘들었던 피해자가 힘을 얻었던 순간들 말이다. “제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줘서 고맙다”는 정신장애인의 감동적인 문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줬던 것 같다.

“발젯거리는 어떻게 찾아요?” 다행히 이 질문엔 거침없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민하고 걱정할 시간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부터 물어보면 된다고 말이다.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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