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내부고발은 배신이 아니다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공로가 미국에서는 인정됐지만, 정작 현대차에서는 해고와 법적조치 당해
내부고발은 배신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 한국의 분위기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 기업은 고발대상에서 제외
법 정비와 사회적 인식 개선 시급해
김광호씨는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한 엔진의 결함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미국과 한국 정부에 이를 제보했다. 이 공익제보로 모두 1만 7천 대가 넘는 차량이 리콜됐고,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에서 8천만 달러가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김광호씨가 받은 포상금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공로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는 현대자동차로부터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고,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되기도 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도 공익제보자로 인정받아 포상금을 받았지만, 2억 원을 받는데 그쳤다. 김 씨의 사례처럼 한국에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너무 미흡하다.
김 씨는 그나마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고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내부고발자의 고발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가장 유명한 내부고발은 1990년 감사원의 이문옥 감사관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갑자기 중단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감사관은 이런 사실을 폭로한 뒤 파면과 함께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까지 당했다.
6년 뒤 감사원의 현준희 주사는 콘도비리에 대한 감사가 상부압력으로 중단됐다는 내용을 폭로했다가 역시 파면과 함께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이밖에도 군내 부재자 공개투표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 군납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해군 소령, 에이즈 감염 혈액 유통을 폭로했던 혈액원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몸담고 있던 조직에서 쫓겨나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부당한 처사라며 소송에 나서지만, 법정 다툼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설령 어렵게 복직이 된다 하더라도 자신을 백안시하는 조직에서 버티기는 사실상 힘든 것이 현실이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현준희 감사원 주사가 해고된 뒤 남긴 말이다.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과 대우를 가장 정확히 지적한 말이다. 내부고발자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시절부터 주입돼 온 조직에 대한 복종과 충성이라는 강압적 문화, 충,효를 강조해온 유교적 전통, 이를 악용해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해온 기득권층의 욕망 등이 합쳐진 결과다.
이런 뿌리 깊은 문화는 설령 자신이 기득권층이 아닌 고발자와 같은 피해를 입고 있는 하부 조직에 있더라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내부고발자를 기득권층과 같이 '배신자'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만들어졌지만, 그나마 신고대상범위나 신고기관이 제한적이다. 특히 기업을 신고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만일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공익신고가 이뤄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망자만 1500명이 넘고, 이후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의 조사 결과는 이보다 열 배가 많은 1만 4천 명에 이른다.
법률적 보호장치가 없다면 이런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기업 비리에 대한 공익제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법률적인 보완이 시급한 이유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개선이다. 공익제보로 김 씨처럼 거액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보상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고통받는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서 거액의 보상금을 김 씨에게 지급할 수 있었던 것은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김 씨에 대한 보상이 한 걸음 전진을 위한 소중한 결과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CBS노컷뉴스 문영기 논설위원 cbsmy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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