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질하고 물건 팔고 아이 업고..박수근의 눈에 비친 여성들

김종목 기자 2021. 11. 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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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역대 최대 규모' 박수근전 오늘 개막

[경향신문]

박수근,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x38cm, 리움미술관
회화 등 174점·아카이브 100여점
여성 노동 주목한 작품들 많아
이건희 컬렉션 ‘세 여인’ 등 첫선
작품·시대 접목해 총 4부로 구성

박수근(1914~1965) 대규모 회고전에서 눈여겨볼 것은 ‘여성노동’이다. 박수근은 절구질하고, 물건을 팔며,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의 모습을 가장 많이 그렸다. 투박한 질감의 그림에는 고된 여성노동이 펼쳐진다. 많은 화가들이 자연 풍경에 파고든 그 시절 박수근은 남성 청소부나 이웃 아이와 노인의 모습도 종종 재현했다. 그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건 거칠거칠한 한국·토속적 미감 말고도 여성, 노인, 어린이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요즘 말로 ‘소수자’이기도 하다. 박수근은 실직자의 모습도 화폭에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1일 개막하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에서 여성노동과 소수자를 재현한 박수근을 볼 수 있다. 박수근은 12세 때 ‘만종’ 등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밀레가 소농 계급의, 소외당한 농부들을 주목한 것처럼 여성노동에 주목했다.

‘귀로’(1964년) 서던캘리포니아대 퍼시픽아시아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관은 “당시 한국전쟁 직후라 남성 청년층이 거리에 별로 없기도 했다”면서도 박수근의 여성주의 측면을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박수근은 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직접 했다. 결혼하고 아내한테 보낸 편지를 보면 절절하다. 당시 한국의 마초 남성과는 달랐다. 작가를 연구하면 성향이 보이는데, 박수근이 여성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던 인물이었던 건 분명하다.”

박완서(1931~2011)도 소설 <나목> 후기에서 박수근을 두고 이렇게 썼다.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박수근은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다. 미군 초상화를 그리라고 꾄 이가 박완서이다. 박완서는 <나목>에 박수근을 모델로 한 옥희도 화백과 그림 ‘나무와 여인’을 등장시킨다. 이 그림은 실제 박수근의 작품이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리움미술관

미술관은 회화·판화·드로잉·삽화 174점과 아카이브 100여점을 전시한다. ‘노인들의 대화’(미국 미시간대 미술관 소장), ‘세 여인’(이건희 컬렉션), ‘웅크린 개’(개인 소장) 등 유화 7점은 첫 공개다. 미술관이건, 갤러리건 박수근 전시로는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를 공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선 첫 박수근 개인전이기도 하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리움 등 여러 사립미술관과 개인 소장자에게서 박수근 작품을 대여했다.

미술관은 박수근의 미술과 시대를 접목한다.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4가지 열쇠말에 맞춰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미술관은 1950~1960년대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 사진도 함께 전시한다. 전시는 3월1일까지. 무료.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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