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것"..향불로 수만번 태운 한지

김은비 2021. 11. 1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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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향불작가로 불리는 이길우 화백이 전통 재료와 작업 방식에 유난히 애착을 갖는 이유다.

한국화를 전공한 이 화백이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 2003년 우연히 올려다 본 은행나무 무더기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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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선화랑 '향불 작가' 이길우 개인전
'106개와 스톤' 신작 35점 전시
유명인들 아닌 일상과 가족 소재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향불작가로 불리는 이길우 화백이 전통 재료와 작업 방식에 유난히 애착을 갖는 이유다. 이 화백은 향불로 한지를 태워 생긴 수많은 구멍으로 형성된 하나의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를 중첩하는 독창적 방식으로 유명하다. 한국화를 전공한 이 화백이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 2003년 우연히 올려다 본 은행나무 무더기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작업이다. 그는 “은행잎 뒤로 비친 햇빛이 까맣게 그을린 점 같았다”며 “작업실에 돌아와 향불로 한지를 태워 구멍을 만들었는데, 그 구멍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느낌을 줬다”고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후 18여년 간 그는 향불 작업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멀리서 바라보면 뚜렷한 형체와 색채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무수히 많은 점들이 작가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100호 사이즈 그림의 경우 구멍의 갯수가 5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일일이 향불로 구멍을 내야 하는 만큼 작업 시간도 평균 2개월은 걸릴 정도다. 작가는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작가로서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온 정성을 다 쏟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은 10일부터 이 화백의 최신작 35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108개와 스톤’(stone)을 개최한다. 전시제목 108은 간절한 소망과 바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숫자고, 스톤은 길가에 무의미해 보이는 돌도 관점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그만큼 이번 신작은 오드리 헵번, 마이클 잭슨, 판빙빙 등 유명인들이 자주 등장했던 과거 작품과는 달리 집과 작업실, 부모님이 계신 요양원, 학교 등 주로 작가의 일상이나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최근 갤러리에서 만난 이 화백은 “201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에 대한 애절함과 작가 정신에 대한 고민이 한층 깊어졌다”며 “이번 작품에는 그런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말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이번 전시 작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가 결혼할 당시 가져왔던 작은 달항아리를 그린 ‘보정동 달항아리2’, 친구들과 놀고 있는 아들의 모습과 30년 전 같은 아들과 같은 나이에 자신의 모습을 담은 ‘30년 차이1’과 ‘30년 차이2’ 등이 그렇다. 신문지를 이용해 만든 작품 속 가로로 줄지어진 선은 1970~80년대 브라운관 TV를 보던 기억에서 착안했다. 그는 “어릴적 집에 브라운관 TV가 있었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안테나가 움직여서 화면이 안보여 막내인 내가 안테나를 맞추곤 했다”며 “당시 감성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색채가 흐려진 것 역시 이번 신작의 특징이다. 색채가 옅어지면서 작품 속 형상은 더욱 희미하고 문드러져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 화백은 이런 모습이 마치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아있다고 말한다. 그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주로 미디어를 통해 소통을 한다”며 “미디어 속 시각적 이미지는 더욱 강렬하고 또렷해졌지만, 그 속에 투영된 삶은 오히려 불투명하고 가식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시에 걸린 작품 ‘관객’이 이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품위 있어 보이는 사람들 뒤에 감춰진 그늘과 외로움, 인간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전시는 12월 4일까지.

이길우 화백 ‘30년 차이1’(2021), 순지에 향불, 장지에 채색 및 혼합 기법, 배접, 코팅 125X172cm(사진=선화랑)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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