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내부 고발’ 횡재

김홍수 논설위원 2021. 11. 1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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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스위스 금융그룹 UBS 직원이 비밀 계좌를 가진 미국인 고객들의 탈세를 미국 국세청에 제보했다. 미 국세청은 UBS 미국인 고객 4500명으로부터 세금 4억달러(약 4800억원)를 추징하고, UBS에도 7억8000만달러(96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국세청이 “다 알고 있으니 자진 신고하라”고 압박하자, 제 발 저린 미국 부자 1만4000명이 세금 50억달러(6조원)를 자진 납세했다. 뜻밖의 횡재에 만족한 미 국세청이 UBS 직원에게 1억400만달러(12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일러스트

▶지난 10월 이 기록이 깨졌다. 미국 금융 당국이 투자은행들의 리보(LIBOR) 금리 조작을 고발한 도이체방크 직원에게 2억달러(2400억원)의 보상금을 주었다. 투자은행들이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행 간 초단기 거래 금리인 리보를 수십 년간 조작해 온 사실을 고발한 대가였다. 해당 은행들이 미국 정부에 30억달러(3조6000억원)가 넘는 벌금을 냈으니, 2억달러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부 고발자 최대 보상금 기록은 11억원이다. 2015년 한국전력 납품 업체가 한전에 수입 기계를 납품하면서 263억원이나 바가지를 씌운 사실을 납품 업체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 11억6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기록이 6년 만에 깨지게 됐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현대차의 엔진 결함 은폐를 고발한 현대차 전 직원에게 2400만달러(28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내부 고발자 보상금의 상한이 정해져 있다. 공익 침해(권익위 소관)는 30억원, 세금 탈루(국세청)는 40억원이다. 하지만 상한선까지 받은 고발자는 아직 없다. 세금 탈루 고발자의 평균 보상금은 3200만원, 공익 침해 보상금은 2200만원에 그친다. 최근 5년간 국세청이 탈세 고발 덕에 6조8000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는데, 보상금은 0.9%인 608억원에 그쳤다. 미국은 이 비율이 18%에 이른다.

▶미국은 내부 고발의 천국이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근로자들이 비밀 유지 족쇄에서 벗어나 기업 비리를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게 하는 ‘침묵중지법(Silenced No More Act)’을 제정,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알고리즘 조작 등 페이스북의 치부를 고발하는 내부 직원의 폭로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현대차 직원의 보상금 대박으로 우리 기업에서도 내부 고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도 호미로 막을 건 가래가 아니라 호미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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