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무도 느끼고 기억하고 대화한다
[경향신문]
내가 자원봉사하는 곳은 지하철역에서 한참을 걸어야 한다. 양쪽 길이 빌딩 숲이라 어쩌면 삭막할 수도 있는데 그나마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가로수다. 보도 한복판에 서있는 우람한 나무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다름없다. 그러나 나무 밑동을 보면 작은 벽돌부터 갑옷을 입은 듯한 두툼한 철골 구조물이 나무 몸통을 파고 들어가 있다. 인조 잔디로 위장한 고무판은 나무의 숨구멍을 막고 있는 듯하다.
산림청의 ‘가로수 조성·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가로수의 보호 덮개는 흙의 굳음을 방지하고 수분 흡수, 공기 순환 등을 원활하게 한다. 하지만 보호 덮개는 기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관리가 되지 않아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가로수의 생육을 방해하는 사례가 많다. 이곳에 산림에서 발생하는 목재 부산물인 목재 칩과 목재 펠릿을 활용한다면 덮개 제작으로 인한 예산 절감과 가로수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심의 자투리 빈 공터에도 평소 목재 부산물을 깔아주고 덮어씌우면 향후 꽃과 작은 나무를 심을 수도 있다. 경기 용인에서는 저장한 빗물을 가로수에 공급하고, 야간에는 경관 조명 보호 덮개를 가동해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고 있다.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대학 정문의 한길가 두 은행나무에는 올해도 그물망이 쳐져있다. 노란 은행잎이 망 속에 쌓여간다. 우리 동네 도로변 가로수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그동안 짬을 내어 직접 만든 뜨개 옷이 추위를 재촉하는 이번 비로 인해 빨리 선을 보였다. 우리가 동물을 반려로 대하듯 이제는 나무와 어울리며 가깝게 지내자. 나무도 느끼고 기억하고 대화하는, 우리와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생명체다.
노청한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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