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4년 만에 서울에 돌아와보니

손진석 경제부 차장 2021. 1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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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박상훈 기자

파리에서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4년 만에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 첫해에 나갔다가 정권이 끝나갈 무렵 복귀했다. 그 사이 10년 이상 걸렸을 법한 변화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출국 전보다 체감상 10억원씩 더 붙어 있다. 진짜 이 가격이 맞는지 초현실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유럽에 있을 때 무주택 상태로 해외에 나온 기업 주재원이나 파견 공무원이 “서울에 돌아가기 겁난다”며 고개를 파묻던 장면이 생각난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씩 갖고 있는 지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더니 전부 무겁게 고개를 젓는다. 한 채를 깔고 사니까 실제로 들어온 돈이 없는데 세금만 왕창 올랐다며 화가 나 있다. 거래 비용이 엄청나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려운 처지다.

1주택자까지도 전세 대출을 막아 놓았으니 자가를 전세 주고 다른 집에 전세로 들어가는 것마저도 선택 폭이 좁다. 한마디로 거주의 자유가 제한돼 있다. 정부가 ‘넌 거기서만 살라’며 강압적으로 누르는 것 같다. 배급 사회를 신봉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집에서만 사는 게 아름답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 간 이동이 줄어들면 사는 동네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 서울 사람 상당수는 심기가 불편하다. 강남과 격차가 커져 쳐다보지 못할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 출퇴근하는 지인들은 “강남이 아니더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이 우리보단 낫다”며 불평이다. 비(非)수도권에 사는 친구는 “지방 사람이라는 이유로 ‘3등 국민’이 됐다”고 했다. 여전히 무주택자는 넘쳐난다. 4년 사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계급화가 진행됐다.

파리를 비롯해 런던, 베를린 할 것 없이 근년의 유동성 잔치로 집값이 제법 오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만큼 변화 폭이 아찔하지는 않다. 이런 자산 거품 시대에는 정부가 시장을 다독여 국민 간 격차가 덜 커지도록 파장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반대로 강압적 들쑤시기로 일관하다가 시장의 역공을 받아 양극화를 더 키웠다. 출입처인 금융위원회에는 ‘부동산 투기 특별 금융대응반’이라는 부서가 만들어져 있었다. 수사기관이 아닌 정책 부처에 특정 국민에게 매질을 가하겠다는 냄새를 풍기는 부서가 있다는 게 괴기스럽다. 이런 게 선진국 정부인가.

우리는 물질적 풍요만큼은 확실한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아직 나라가 파도 위에서 요동치는 나룻배 같다. 진짜 선진국은 항공모함처럼 묵직하고 차분하고 예측 가능하게 움직인다. 4년 만에 돌아와 보니 사는 곳에 따라, 자산 규모에 따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갈라져 있다. 몇 달 후 대선이다. 선진국다운 품위를 갖춘 정부가 들어서면 좋겠다. 시장을 이기려고 무모한 싸움을 벌이는 정부는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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