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그리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한국에서 환생했나

윤영신 논설위원 2021. 1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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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탄탄했던 그리스
최저임금 과속 인상하고 세금 퍼주기 하다 몰락
한국, 그 길 가는 중

그리스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가장 먼저 IMF 구제 금융을 받았다. 당시 그리스 총리였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5년 전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왔다. 연단에서 ‘개혁’을 논하던 그의 표정이 생생하다. “내가 총리가 된 뒤 확인해보니 재정 적자 규모가 GDP의 6.5%가 아니라 15.7%였다. 정부가 진실을 숨긴 것이다.”

2015년 1월 3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가운데)가 그리스 아테네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있다./AP 연합뉴스

그가 넘겨받은 ‘거짓말 정부’는 그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집권 11년간 나라를 망친 결과였다. 아버지 파판드레우가 취임한 1980년대 초 그리스의 부채 비율은 20%대 초반이었다. 유럽 강국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튼실한 재정을 자랑했다. 그러나 좌파 포퓰리스트인 아버지 파판드레우가 ‘소득 재분배’ 정책을 펼치면서 그리스는 멍들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을 1년 만에 40% 이상 인상하고 공공 부문 인력을 대거 늘렸다. 전 국민 무상 의료며 무상 교육 등 복지 지출도 마구 늘렸다. 연금 지급액까지 올렸다. 대중이 원하는 건 거의 다 해줬다.

하지만 공짜 세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복지가 더 큰 복지를 부르고, 빚이 더 큰 빚을 불렀다. 부채 비율 ‘20% 선’은 순식간 무너졌고 1990년대 초 100%를 넘기면서 그리스는 부채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노동 개혁과 산업구조 개혁은 뒷전이었다. 성장 엔진이 식으면서 조선·석유화학·자동차 등 제조업마저 침체됐다. 중산층이 붕괴돼 국민 30%가 빈곤층에 쌓여갔다. 포퓰리즘에 눈먼 지도자 한 명이 나라를 거덜 내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은 그리스 판박이 같다. 문 정부는 분배 정책의 일종인 소득 주도 성장을 밀어붙였다. 출범 2년 만에 최저임금을 29% 올렸다. “정부가 최대 고용주”라며 공공 부문 인력을 수십만 명 늘렸다. 7년 연속 흑자였던 건강보험 재정은 무분별하게 건보 혜택을 늘린 ‘문재인 케어’로 만성 적자에 빠졌다. 코로나를 핑계로 시작된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은 정례적 돈 잔치가 돼버렸다. 노동 개혁은 실종됐고 기득권 귀족 노조는 경찰 뺨을 때리고 법을 비웃는다.

문 대통령의 “적정 국가 부채 비율 40%의 근거가 뭐냐”는 한마디에 해마다 100조원씩 빚을 내 평펑 뿌리고 있다. 내년에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고 8년 후 20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까지 30%대 중반을 유지하던 부채 비율이 내년에 50%를 넘고 차기 정부 말엔 60%대 중반으로 치솟는다. 임기 내내 세금 퍼주기만 했던 아버지 파판드레우가 한국에서 환생한 것 같다.

50%를 밑돌았던 스페인의 부채 비율이 90%를 넘는 데 불과 4년 걸렸다. 베네수엘라의 정부 부채 비율도 25%에서 180%가 되는 데 8년 걸렸다. 정권은 매표(買票) 중독, 국민은 공짜 돈 받아먹는 복지 중독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미 중독 단계에 들어섰다. 부자, 빈자 따지지 않고 뿌려대는 온갖 현금 복지에 익숙해졌고 세금 10조원, 20조원 정도는 푼돈 취급하는 세상이 됐다.

선진국들은 정부가 빚을 내더라도 국민의 부담 능력을 벗어나지 않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현 세대의 짐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양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선을 앞둔 지금 한국의 집권 세력은 무슨 수를 써서든 빚을 늘려 국민들 지갑에 현금 꽂아줄 궁리만 한다. 아예 대놓고 포퓰리즘을 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선거 전 현금 세례 판을 벌이겠다는 것 아닌가.

민주당 정권의 ‘그리스 따라 하기’는 5년이면 족하다. 이미 많은 것이 망가졌다. 이대로 10년까지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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