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국민청원
[경향신문]
법을 제·개정하기 위해서는 의원 10명 이상의 발의 또는 정부 입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의원이나 정부가 국민들의 뜻을 모두 반영할 수 없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입법청원 제도를 두고 있다. 여기에는 의원소개청원과 국민동의청원이 있다. 국민동의청원은 전자청원 시스템을 이용해 30일 이내에 10만명의 동의를 채워야 가능하다. 이 기준을 통과한 청원은 소관 상임위에 회부된다. 90일 이내 심의가 돼야 하고, 60일 동안 연장이 가능하다.
지난 9일 국회 법사위에서 박광온 위원장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청원 등 다섯 건의 청원은 위원회 의결로 2024년 5월29일까지로 연장해줄 것을 의장에게 요구하고자 하는데 이의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위원회 의결로 심사 기간의 추가 연장을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한 제안이다. 박 위원장이 언급한 그 연장 시한은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제안은 가결됐다. 상정에서 가결까지 정확하게 40초가 걸렸다.
다섯 건의 청원에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포함됐다.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없애자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발의된 후 1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6월 입법청원한 시민단체들은 ‘90일 연장 이후 또 60일이 경과된’ 이날(11월10일)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연내 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에 들어갔고, 부산에서부터 30일간 72만보를 걸어온 활동가 2명도 국회 앞에 도착했다.
법사위는 “관련 법률 개정과 제도 변경 등과 연관돼 있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도 있게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차별금지법 제정 등 시민들이 어렵사리 서명해 요청한 법안이 40초 만에 ‘또 나중에’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의원이 아니면 입법에 간여하지 말라는 것이나 매한가지로, 입법청원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처사이다.
10만명은 웬만한 한 지역구 의원의 득표수를 넘어선다. 이들의 목소리가 의원 1명의 발언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법 논의를 한없이 미룬 국회는 국민을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차별하지 말길 바란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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