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 22일만에 '비석 없는' 신 묘역 방문으로 끝난 윤석열의 사과

오연서 2021. 11. 10. 2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 대선]윤 후보, 5·18 광주민주묘지 찾아 사과
시민들 "당신이 전두환" 강력 반발에
추모탑까지 못가고 담화 뒤 발길 돌려
'전두환 비석' 놓인 구 묘역은 방문 않아
민주, "출장 쇼" "스토킹식 사과" 비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를 찾았지만,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 막혀 묘역 근처에서 멈춰 서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고는 그야말로 정치는 잘했다”고 언급한 지 22일 만에 광주를 찾아 사과한 것이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혀 민중항쟁추모탑 50여m 앞 광장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해야 했다.

그는 묵념 뒤 읽은 입장문에서 “저는 40여년 전 5월의 광주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오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 여러분께서 염원하시는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고 여러분께서 쟁취하신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말한 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참배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마음은 상처받으신 국민, 특히 광주시민 여러분께 이 맘을 계속 갖고 가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항의에 대해서도 “분향은 못했지만 사과드리고 참배할 수 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실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선 “제 원래의 생각이 5·18 정신이란 건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또 우리 헌법가치를 지킨 정신이므로 당연히 헌법 전문에, 헌법이 개정될 때 반드시 올라가야 된다고 늘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오월어머니회 등 광주지역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1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묘지 참배에 반대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광주 시민단체와 대학생 단체, 오월어머니회 등은 오전부터 5·18묘지에 모여 윤 후보 규탄 행동에 나섰다. 묘역 초입인 추념문에서는 시민 50여명이 ‘학살자 미화하는 당신이 전두환이다’라고 쓴 펼침막을 건채 윤 후보의 참배를 저지하기 위해 길목을 막아섰다. 참배단이 있는 추모탑 앞에는 희생자 가족으로 구성된 오월어머니회 회원 20여명이 서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거나 “가짜 사과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민주묘역을 찾은 광주시민 김아무개(52)씨는 <한겨레>와 만나 “‘전두환 발언’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렇게 와서 얼굴을 비춘다고 바로 마음이 화가 사그라들겠냐”라고 말했다.

윤 후보가 ‘전두환 기념비’를 밟을 것인지도 관심사였지만, 윤 후보는 전두환 비석이 묻힌 망월동 묘역(구 묘역) 대신 국립5·18민주묘지(신 묘역)를 찾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윤 후보의 광주 방문에 대해 “광주 출장 정치쇼”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고용진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일방통행식 사과, 보여주기식 사과, 말만 번지르르한 사과이기에 (광주 방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에겐 광주민주화운동이 표 계산용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광주 시민에겐 진정한 해원과 용서의 문제”라며 “5·18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포함하는 노력을 하고 5·18 진상규명에 앞장서겠다는 것, 역사 왜곡에 대한 당 차원의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의 주역들을 당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을 명확하게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사과의 마음을 담아 대통령 후보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며 “억지 사과, 일방통행 사과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과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구체적 실천과 약속이 병행돼야 한다”며 “5·18정신 훼손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등 국민의힘 차원의 책임 있는 약속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앞서 이날 오후 전남 화순군 고 홍남순 변호사 생가를 찾았다. 홍 변호사는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법 위반 사건의 변론과 양심수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맡는 등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힌다. 윤 후보는 홍 변호사 유가족들과 차담회에서 “제가 검찰에 있을 때 아껴주던 선배의 형수가 조비오 신부님 막내 여동생이었다. (선배의) 집에 가면 옛날부터 두분(조비오 신부와 홍 변호사)이 가까우시니까 홍 변호사님 말씀 좀 들었다”며 홍 변호사와의 간접적인 인연에 대해 소개했다. 윤 후보는 11일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한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다.

광주/오연서 김용희 기자 lovelette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