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는 극장, 얼굴 없는 감독

한겨레 2021. 11. 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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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숨&결] 이길보라|영화감독·작가

2021 일본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뉴아시안커런츠 부문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에 2015년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초청되었고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제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지역 중심의 영화제다.

1989년부터 격년으로 개최되는 영화제는 아시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하고 대중화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흥미로운 것은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라고는 한번도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연령대의 관객이 진지하게 영화를 관람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아무리 난해한 내용이더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영화를 지켜본다. 평소에는 한산한 거리가 다음 회차 영화를 보기 위해 바삐 걷는 이들로 가득 찬다. 밤이 되면 이 모든 이들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제 공식 주점 ‘고미안’에서다. 제작진, 심사위원, 관객, 영화제 관계자들이 전부 모인다. 감독에게 기획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직접 묻기도 하고 다른 관객과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창작자와 관객의 거리가 가까운 영화제다.

올해 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심사위원만 모여 영화를 관람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제작진과 관객이 없으니 기분이 영 나지 않았다. 공식 주점도 온라인으로 열렸다. 메타버스 플랫폼에 접속하여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위치를 조정하며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뉴아시안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90년생인 나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영화를 만드는 87년생 히로세 나나코 감독이었다. 둘 다 30대 여성 감독이라는 점이 파격적이었다. 국제경쟁 부문 역시 5명의 심사위원 중 3명이 여성이었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만난 대만 출신 창작자가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지만 혹시 몇살입니까? 심사위원치고는 어려 보여서요.”

개막식과 폐막식은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이기에 일어와 영어가 공용어였다. 그러나 더 나은 소통을 위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기를 권했다. 영어를 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더 잘 말할 수 있는 나는 한국어로 심사평을 쓰고 읽었다. 수상작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모국어를 사용하고 그에 맞는 통역사가 배치되었다.

수상작을 발표한 후 영상편지 형식으로 소감을 들었다.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찍은 영화를 독일로 망명하여 만들었다는 감독부터 정치적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미국에 망명한 감독, 미얀마 내전으로 연락이 닿지 않아 학교 쪽에서 수상 소감을 대신 보내온 감독까지.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아 보여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분쟁, 망명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무겁게 했던 건 국제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실명 대신 ‘홍콩다큐멘터리필름메이커스’라는 이름으로 출품한 영화가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스크린에는 영화의 한 장면만이 띄워졌다. 그 사이로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객 없는 극장에서 얼굴 없는 감독의 수상 소감을 들었다. 참담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을 느낄 때쯤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라도 연대의 마음을 보내주어 고맙다고.

어떤 연락도 취할 수 없는 내전 상황에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망명한 곳에서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를 떠올린다. 온라인으로 영화를 관람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연대하는 관객을 생각한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나누는 안부 인사를 바라본다. 여느 해보다 엄숙했던 폐막식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고 관람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를 통해 나는 잠깐이나마 홍콩이 되고, 미얀마가 되고, 아프가니스탄이 되고, 팔레스타인이 될 수 있다. 영화로 연결된 이들에게 사랑과 우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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