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한국사 축소, 문 대통령도 아시나요?

전정윤 2021. 11. 10. 18: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국에서]

2015년 11월4일 오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반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국민불복종 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편집국에서] 전정윤|사회정책부장

‘교육부, 고교 한국사 수업 축소 논의…교육계 “현대사 제대로 못 배워” 반발’

교육담당 기자가 보내온 <한겨레> 10월27일치 9면 기사를 처음 받아보곤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역사 교사들이 충돌했다고?’ 정권을 불문하고 교육당국과 현장 교사들 사이에 상존하는 ‘갈등’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서슬 퍼렇던 시절 교육 기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새정치민주연합과 역사 교사들이 ‘원팀’으로 ‘역사 전쟁’을 치른 과정을 취재했던 제게는 예상치 못한 전개입니다. 급기야 지난 9일치 1면에는 굵고 붉은 글씨로 “교육부는 역사교육의 파행을 불러올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수업 시수 감축안을 당장 폐기하라”고 성토하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의견광고가 게재됐습니다. 이 역시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수업 시수를 더 확보하려는 과목별 교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시절 ‘밥그릇’을 깰 각오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온몸으로 저지한 교사들을 본 저로서는 쉽게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던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된 뒤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화를 정권 주요 과제로 밀어붙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승자 중심의 단일 역사관을, 역사적 사실도 왜곡해가며 가르치겠다는 실로 대담한 기획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자유민주주의 파동’과 박근혜 정부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겪은 역사 교사들은 일찌감치 이 전쟁을 예견하고는 큰 그림을 그리며 국정화에 대비했습니다. 2015년 11월4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비장한 ‘역사국정교과서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습니다. 그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촛불이 국정농단 사태를 거쳐 결국 박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때까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역사 교사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 같은 기자들이 쓴 기사, 당시 문 대표를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이 정부 여당에 날을 세울 무기로 쓴 주장과 정책의 밑바탕이 된 자료들은 바로 역사 교사들의 밤낮과 주말을 잊은 피, 땀, 눈물의 소산이었습니다.

함께 큰 전쟁에서 승리한 문 대통령과 역사 교사의 균열은 지난달 22일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현행 3년간 총 102시간인 한국사 필수 이수 학점을 80시간으로 줄이는 방안(6단위에서 5학점으로)을 발표하면서 돌출했습니다. 역사 교사들은 현대사 교육이 부실해질 거라 우려합니다. 현 교육과정은 중학교에서 근현대사 이전 중심, 고교에서 근현대사 중심으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늘리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을 모두 2학점씩 줄인 가운데 한국사는 필요성을 인정해 1학점만 줄인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교육부가 국영수 필수 이수 학점을 줄이더라도 일선 학교들이 알아서 입시 영향력이 큰 과목을 ‘최대치’로 편성할 겁니다. 사회(역사 포함)·과학 과목에서 줄어든 필수 이수 학점은 해당 선택과목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반면 한국사는 필수 이수 학점만큼만 ‘최소치’로 가르칠 것입니다. 역사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명박근혜 정부 10년에 걸친 역사 전쟁의 결과가 ‘한국사만 수업 시수 감축’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셈입니다. 한국사 적정 시수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특수 과목’임을 고려하면 분명 토론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더욱이 교육부가 ‘선수’들은 빤히 아는 ‘얕은 꼼수’로 이를 정당화하려 든 건 역사 교사들의 불신만 자초한 오판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대통령’ 꼬리표가 억울할 리 없는 ‘기획자’였습니다. 반면 굳이 그럴 이유도 없는 문 대통령이 교육부의 ‘꼼수’로 인해 ‘한국사 교육을 약화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함께 촛불을 들었던 역사 교사 2115명과 척을 진다면 몹시 억울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이 모든 사실을 보고받았다면 정책 결정 과정에 유감을 표하며, 대통령도 몰랐다면 총론 확정 전 공론화와 재검토를 촉구합니다. ggu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