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머니들 묘역서 빗속 4시간 침묵.."광주시민 마음 다르지 않아"

글·사진 강현석 기자 2021. 11. 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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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민단체 “윤석열 가짜 사과 필요 없다”
광주 도심 곳곳 플래카드 수백여 장 걸려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10일 오후 광주 5·18국립묘지 제단 앞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묘역 참배를 반대하며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10일 오후 1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비옷 한 장만 걸친 ‘오월 어머니’ 20명이 묘역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5·18민중항쟁추모탑 앞에 설치된 제단으로 접근하는 길을 몸으로 막아섰다.

제단은 5·18묘지를 참배하는 참배객들이 오월 영령들에게 헌화·분향하는 곳이다. 어머니들은 ‘가짜사과 필요없다 광주에 오지마!’ ‘학살자 찬양 가짜사과 전두환과 다를게 없다!’ ‘5·18부정 모욕은 민주주의 역사 부정!’ 등이 적힌 팻말을 가슴에 품었다.

어머니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5·18묘지를 참배하고 돌아간 오후 4시40분까지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곁에서 이를 지켜본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젊은 사람들도 추위에 떨고 있는데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들께서 혹여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광주 5·18국립묘지에서 10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묘역 참배를 반대하며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오월 어머니회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이다. 이들의 침묵시위는 이날 광주를 찾은 윤 후보를 바라보는 광주시민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들 앞에 자리를 잡은 50여명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윤 후보의 가짜사과는 필요없다. 우리도 결연한 의지로 침묵하겠다”고 말했다.

5·18묘지 주변과 광주 도심 곳곳에는 윤 후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5·18묘지와 망월동 구묘역 인근 도로에는 ‘학살자 전두환 비호, 가짜 사과 망월동을 더럽히지 말라!’ ‘5·18부정, 모욕! 전두환 닮은 꼴! 광주시민 한뜻으로 거부한다’ ‘정략적인 가짜 사과쇼 필요없다! 광주를 더립히지 말라’ 내용의 플래카드 50여개가 걸렸다.

광주 서구 광주시청 인근 도로에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광주방문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광주 도심인 광주시청 인근 도로에서 비슷한 내용의 플래카드 수십여장이 게시됐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모두 윤 후보의 광주방문을 거부하는 내용이다.

광주지역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9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 후보의 광주 방문에 “진정성 없는 사과 방문으로 민주 성지를 더럽히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호소문을 통해 윤 후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플래카드 걸기’ 운동을 제안했다. 광주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는 이 제안에 대한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응답이었다. 기우식 참여자치 21 사무처장은 “광주 전역에 수백여개 플래카드가 내걸린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서 10일 경찰들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방문에 대비해 경비를 서고 있다.

윤 후보의 방문이 예고되면서 10일 5·18묘지 주변은 종일 긴장감이 흘렀다. 전국에서 온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40명은 전날부터 5·18묘지 입구에서 윤 후보의 참배를 막겠다며 천막농성을 벌였다. 박찬우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집행위원장은 “윤 후보의 5·18묘지 참배를 막기 위해 모였다. 전두환과 다를 바 없는 그의 광주 방문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경찰이 5·18묘지 입구에 출입로 확보를 위한 울타리를 설치하면서 오월 어머니회와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경찰은 5·18묘지 주변에 17개 중대 1000여명에 이르는 경찰관을 배치했다. 일부 경찰관들이 출입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곳곳에서 반발이 일기도 했다. 윤 후보 지지자와 보수 유튜브 방송 진행자들까지 몰리면서 영령들이 잠든 묘지는 내내 소란스러웠다.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주변에 10일 오후 4시45분쯤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가 나타나자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바라보고 있다.

윤 후보는 이날 결국 제단까지 가지 못하고 추념문과 5·18민중항쟁기념탑 사이에서 묵념으로 ‘1분 참배’를 마친 뒤 발걸음을 돌렸다. 5·18묘지 앞을 지키던 이들은 다함께 일어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시민 장모씨(45)는 “오월 어머니들은 수준 낮은 정치인을 의식 있는 시민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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