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의 과학기술 감수성 [김우재의 플라이룸 (16)]

2021. 11. 1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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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한국도 드디어 독자기술로 지구 중력권을 벗어날 수 있는 우주발사체를 만들게 됐다.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발사체를 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 이란, 북한뿐이다.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우주 기술개발에서, 나로호의 의미는 의미심장하다. 한국이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 국가의 위상이 올라갈 뿐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새로운 국면이 열리기 때문이다.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누리호 발사는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 특히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에겐 특별한 의미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사 현장을 찾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다음에 “우주 과학기술인 여러분”을 놓아 과학기술인의 노고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았다. 담화 발표 중에 과학기술인을 병풍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있지만, 담화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까지 지울 수는 없다. 3374자, 768단어의 담화는 문재인 청와대가 누리호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보여준다.

대선후보들 누리호를 평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898자, 196단어로 누리호 메시지를 냈다. 그는 “우주시대를 향한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모든 연구원과 국내 산업계의 노력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할지라도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는 말로, 우주개발에서 실패가 용인돼야 한다는 철학을 보여줬지만 경제나 노동, 대장동 개발에 관한 글의 섬세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석열 후보는 427자, 97단어로 짧게 누리호 발사를 축하했다. 그는 우주개발에서 누리호 발사의 의미를 정확히 짚었고,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 대부분은 공학자 혹은 엔지니어다. 한국사회는 과학기술의 주체를 지나치게 과학자의 치적으로 여기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우리 생활을 실제로 바꾸는 기술은 대부분 과학자가 아닌 엔지니어에 의해 주조된다. 차기 대통령은 누리호 개발의 공을 한국 엔지니어들에게 돌렸으면 한다.

홍준표 후보는 페이스북에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았고, 한 방송에서 짧게 축하메시지를 남겼다. 원희룡 후보는 951자, 229단어의 메시지에서 ‘꿈꿀 수 있는 나라, 기회가 넘치는 나라’를 강조하면서, 카이스트 교수진과 함께 제주도에서 추진 중인 소형 과학로켓을 소개했다. 하지만 적도에서 가까울수록 발사각에서 유리한 우주발사체 개발에서, 제주가 아니라 전남 고흥이 최종 부지가 된 이유에 대해 정치인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마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나라엔 희망이 없다. 유승민 후보는 허경영 후보와 함께 아예 나로호 관련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는 625자, 157단어의 메시지에서 정의당이 대한민국의 우주시대를 여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국 진보정당이 과학기술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의문이다. 며칠 전 ‘과학기술’을 대선공약의 화두로 내세우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는 2626자, 619단어로 된 긴 메시지에서 누리호에 대한 큰 관심을 보여줬다, 그는 우주발사체 개발의 의미를 정확히 짚었고, 연구개발에서 실패의 의미를 에디슨의 사례를 통해 잘 설명했으며, 누리호의 개발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돼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줬다. 적어도 누리호 관련 메시지만으로 본다면, 대통령에 비견되는 이는 안철수뿐이다.

미국 반도체 정보공개에는 ‘입 꾹’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과 안보 측면에서만 소비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류의 오랜 노력인 과학과 기술개발로 인간의 생활에 편리를 제공하는 공학의 기저에는 인류가 꿈꿔온 문명의 총체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 경쟁력이 한 국가의 존망을 결정한다는 건 냉혹한 현실이다. 미중이 반도체 및 첨단기술 패권을 두고 극도로 대립하는 건 바로 두 국가의 지도자들이 과학기술에 얽힌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 생태계는 바로 이런 국제경쟁의 정치적 맥락과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발전과 수익창출을 원하는 정부와 기업의 경제적 맥락 속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 국가의 정치 지도자는 과학기술을 수단이나 도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국제정치와 국내경제의 맥락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세계 반도체 업계에 공급망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회사가 가진 반도체 재고는 물론 고객사 주문과 판매 정보까지 내놓으라는 이 요구에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면서 과학기술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뒀고, 그중 반도체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에 국가의 사활을 걸었다.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기업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대응하라는 무책임한 발언 외에는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한달 넘게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그는 한달 전쯤 경기도를 한반도 평화경제 중심의 첨단산업과 반도체 허브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지만, 바이든의 정보공개 요구에 대한 메시지는 없었다. 11월 중 이재명 후보의 미국 방문이 예정돼 있다고 하니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일본과의 반도체 갈등에서 강력하게 발언하던 모습과 비교해보면, 미국을 대하는 이재명 후보의 모습은 어색하다.

윤석열 후보는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서울대 반도체 연구소 방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 대통령의 황당한 요구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 중인 홍준표, 원희룡, 유승민 후보 모두 미 정부의 요구에 대한 메시지를 전혀 내지 않았다. 심상정, 안철수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정치인 중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건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 정도다. 그는 지난 10월 5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산자부의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국 경제의 기둥, 반도체 산업이 건곤일척의 위기에 놓인 이때,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는 정치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한국 정치는 대장동과 고발사주에 오염됐다. 생각해보면 구한말 대한제국의 황제와 민씨 일족이 그랬다. 누군가는 그 비참한 역사의 재현을 막아야 한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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