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징어게임' 영희가 노려봐요" 상담사 '이석' 감시하는 콜센터

맹하경 2021. 11. 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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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콜센터 야간조 김영현(가명·40)씨의 출근 시간은 오후 5시다.

김씨는 "어차피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석' '인콜(상담 중)' 등이 다 기록되는 데도 굳이 채팅창에다 실시간 보고를 요구한다"며 "화장실 가는 걸 굳이 'ㅎㅈㅅ'이라고 쓰게 하는 건 수치스럽다 했더니 '콜센터는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콜센터의 과도한 이석금지 행태는 김씨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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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수 도급 경쟁이 낳은 '이석금지'
"화장실도 보고해" "동시 2명 못 쉬어"
일감만 떠넘기는 구조개선 시급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영희'를 본뜬 동상이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설치돼 있다. 영희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로 참가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총을 쏴 죽이는 공포의 대상이다. 뉴시스

배달의민족 콜센터 야간조 김영현(가명·40)씨의 출근 시간은 오후 5시다. 자리에 앉아 회사 컴퓨터에 로그인하면 커다란 눈동자 사진들이 걸려 있는 한 채팅방이 바빠진다. 채팅방 이름은 '이석(離席·자리를 뜸)방'. 이 방에 들어와있는 중간관리자들의 프로필 사진들은 놀랍게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영희 얼굴. 각도와 포즈만 저마다 다를 뿐 참가자들을 무참하게 죽이던 영희의 얼굴이다.

채팅방에서 저마다 '영희'를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 놓은 관리자들. 김씨 제공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요즘 콜센터 업계는 이른바 '영희 프사(프로필 사진)' 문제로 소란스럽다. 김씨는 "입사하는 순간 이석방에 초대되고 나갈 수 없다"며 "화장실에 가건, 담배 잠깐 피우건, 왜 자리를 뜨고 언제 돌아왔는지 일일이 이석방에다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속 영희는 괜한 허구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석방의 암호들 ... 'ㅇㅅ' 'ㅎㅈㅅ' 'ㅂㄱ' 무슨 뜻?

김씨가 속한 이석방에서 사람들이 1~3분 간격으로 '화장실', '복귀', '이석' 등을 나타내는 자음들로 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김씨 제공

이석방 대화는 자음들로만 이뤄진다. 'ㅇㅅ'은 '이석'한다는 뜻이다. 'ㅎㅈㅅ'은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얘기다. 'ㅂㄱ'은 '복귀'했다는 의미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려면 상담사는 반드시 자음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돌아올 때 남기는 자음 'ㅂㄱ'으로 관리자는 이석 시간을 잰다.

김씨는 "어차피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석' '인콜(상담 중)' 등이 다 기록되는 데도 굳이 채팅창에다 실시간 보고를 요구한다"며 "화장실 가는 걸 굳이 'ㅎㅈㅅ'이라고 쓰게 하는 건 수치스럽다 했더니 '콜센터는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중간 관리자들은 가만 있지 않는다. 'ㅇㅅ'이 있다 싶으면 이내 "자리를 방문하겠다" "이석이 많다"는 글을 채팅창에 올린다.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ㅎㅈㅅ'이 아닌 단순 'ㅇㅅ'에 인원 제한이 있다. 일정 정도 사람들이 나가 있다면 더 이상 나갈 수 없다. 김씨가 근무하는 콜센터는 최근 이 인원 제한이 암묵적으로 1명이 됐다. 한마디로 자리 비우는 사람은 딱 1명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콜이 없어 대기 중이어도 자리를 뜨지 말고 상담 매뉴얼을 자습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쏟아지는 콜 수 압박… "하청구조가 문제"

'영희' 사진이 걸려 있는 이석방 채팅창. 김씨 제공

콜센터의 과도한 이석금지 행태는 김씨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9월 콜센터 상담사 325명을 대상으로 부당한 대우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석금지가 39.7%로 가장 많았다.

어떻게든 이석을 막으려는 건 '콜 수' 때문이다. 원청은 콜센터 인력을 거느리고 있는 도급사 여러 곳을 경쟁시킨다. 콜센터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상담 즉, 콜을 해결해야 한다. 이 부담은 상담사들에게 쏠린다. 김씨 센터의 경우 1개월 차는 하루 '40 이상', 12개월 차는 '70 이상'이 최저선이다. 음식 주문과 배달이다보니 콜 한 건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힘들어서 사람이 나가면 새 사람이 올 때까지 그 사람 몫까지 떠안아야 한다. 연차를 편히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무턱대고 일감만 넘기는 구조 때문에 콜센터 상담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최재혁 사무금융노조 비정규센터 부국장은 "최근 콜센터 노동자들로부터 '영희 사진 상담'이 많아졌다"며 "이런 관리상의 불합리는 근본적으로 원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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