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난세 속 영재들의 처세술

이영숙 동양고전학자·'사랑에 밑줄 친 한국사’ 저자 2021. 11.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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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발굴단’이란 TV 프로그램에선 영특하고 재주 많은 아이들이 등장해 놀라움을 안긴다. 우수한 아이들을 발굴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닌 듯싶다. 중국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의 명사들의 일화를 실은 ‘세설신어’는 그 시절 영특하다던 아이들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삼국시대 종육(?~263)과 종회(225~264) 형제는 어려서 똑똑하다고 명성이 자자했다. 하루는 위 문제 조비가 형제를 불렀다. 하늘 같은 지존을 마주해 잔뜩 긴장한 형 종육은 얼굴 가득 땀을 흘린다. 문제가 “어찌 그리 땀을 흘리느냐?”고 묻자, 종육은 “두렵고 황공하여 땀이 국물처럼 흐릅니다”라 답한다. 반면 멀쩡한 얼굴의 아우 종회에게 “어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가?”라고 묻자, 종회는 “두렵고 떨려 땀이 감히 나오지 않습니다”라 대꾸한다.

두 아이 모두 지존의 권위를 한껏 충족시키는 순발력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 명은 신중하게, 다른 한 명은 담대하게. 둘 중 훗날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이는 대범한 종회였다. 그는 촉을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종국엔 당시 위나라의 권력자 사마소에게 반란을 일으켜 죽임을 당하니, 어릴 적 그를 돋보이게 했던 대범함이 난세엔 송곳처럼 그를 찌른 셈이다.

처세술이 남달랐던 왕융(234~305)도 있다. 그는 일곱 살 때 길에서 열매가 많이 달린 오얏(자두)나무를 보았다. 아이들이 모두 다투어 따는데도 왕융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연유에 대한 그의 설명이 걸작이다. “길 옆에 있는데도 열매가 많으니 틀림없이 맛이 쓴 오얏일 겁니다.”

하나를 보고 세상사의 이치까지 꿰뚫어본 왕융. 과연 그는 난세에는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은거하며 죽림칠현으로서 목숨을 보전하다가, 서진 정권에 중용되어 고위직을 역임하기도 한다. 타고난 통찰력으로 생존과 권력의 줄타기를 기막히게 잘해낸 셈이다.

세상을 읽는 눈과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심미안을 지녔던 그 시절 난세의 영재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그에 따라 영재의 기준 또한 다양하게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는 그들의 존재감이다. 기준이야 어찌됐든 그들이 활약할 미래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동양 고전학자 이영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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