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45] 디지털세와 신성모독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2021. 11.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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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 전에는 교황의 한마디가 곧 기독교 세계의 질서였다. 교황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기독교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대서양을 좌우로 나누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과 구대륙을 사이좋게 분할 점령토록 한 것이다. 이를 토르데시야스(1494년) 조약이라고 한다.

종교개혁 뒤 세상이 달라졌다.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교황청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도양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향료 무역을 시작했다. 영국이 자극을 받았다. 상인들의 자본금을 모아 무역 회사를 세웠다. 동인도주식회사였다.

이 회사의 공식 명칭은 ‘동인도와 무역하는 상인들의 회사와 그 총재’다. ‘회사와 그 총재(Governor and Company)’라는 긴말을 붙인 것은, 당시 ‘법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조직은 인격이 없기 때문에 영업과 관련한 모든 계약과 책임은 자연인인 총재 몫이었다.

그 뒤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법적 책임 때문에 총재나 사장 맡기를 부담스러워하자 “인간이 만든 조직도 인격이 있다”고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인격이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19세기 초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에드워드 더로는 “법인은 처벌할 육체도, 비난할 영혼도 없다”고 푸념했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본 것이다.

21세기의 글로벌 기업들은 육체가 없으나 인격은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고 있어서 마치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기처럼 느껴진다. 조세 회피처를 이용해서 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다. 영락없는 조물주 모습이다.

G20 정상들이 그런 신성모독에 대해서 칼을 뽑았다. 디지털세다. 서로 의기투합하여 플랫폼 기업들에 경계선을 긋고 법인세를 나눠 갖기로 했으니 디지털세는 21세기의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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