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성이 지닌 전복적 잠재력..부계적 문명의 벽을 허문다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 (12)]

김홍희 2021. 11. 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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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예술· 저항예술' - 임민욱 vs 송상희 vs 김아영

[경향신문]

임민욱, ‘포터블 키퍼’( 2009, 싱글채널비디오, 12분53초)‘, 작가 제공

1 일탈적 정치예술과 저항예술

황금의 복식조 11라운드는 임민욱(1968), 송상희(1970), 김아영(1979)을 초대했다. 이들은 근대주의 진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현대적 개념의 정치예술을 수행하는 한편, 형식주의 모더니즘으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다매체 실천으로 역사적 저항예술의 계보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예술은 정치성이 정제된 비/탈정치적인 것이며, 이들의 저항의식 역시 은유와 의역의 수사로 미학화된다. 또한 재현과 젠더, 차이의 문화적 코드에 주목하며 담론적·실천적으로 페미니즘과 공유 지대를 형성, 현대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의 양 영역을 확장·심화시킨다.

2 임민욱, ‘내 안의 바틀비’

임민욱 ‘관조…건너뛰기의 미학’
무력·게으름으로 ‘거부’ 수행하고
은폐적 존재들의 역사에 시선 돌려

임민욱의 정치사회적 문제의식과 시대비판적 태도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적 삶과 실존 경험에 기인한다. 그러한 까닭에, 비장하리만큼 진지한 그의 작품세계는 인간적 온기와 감각적 파장의 울림으로 보는 이를 공명시킨다. 이러한 자장력 또는 인간적 흡인력은 확신에 찬 명증보다는 문제를 꺼내놓고 회의하고 곱씹는, 결론을 유보하는 그의 사유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회피할 수 없는 머뭇거림으로부터 거리두기식 관조, 건너뛰기 미학이 도출되고 그로부터 잠재된 정치의식이 외연화된다. 허먼 멜빌의 소설(<필경사 바틀비>) 속 ‘바틀비’와 동일시하는 듯, 그는 무기력으로 거부와 저항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바틀비가 되어 정치를 뛰어넘는 도약적 정치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임민욱의 작가 경력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프레드릭 미숑과의 ‘피진 콜렉티브’ 활동으로 출발했다. 1999년의 문제작 ‘사회적 고기’가 예증하듯, 그의 청년기는 도발적이고 교란적인 액티비즘으로 점철됐다. 이력의 중간허리이자 왕성한 다작의 시대였던 2005~2010년은 신자유주의 여파로 가속화된 한국의 건설 붐과 신도시 문화의 폐해에 초점을 맞추어, 근대화와 획일화의 주제를 시적이고 서사적인 다큐멘터리로 일궈낸 일련의 퍼포먼스 비디오를 발표했다. ‘뉴타운 고스트’(2005)가 이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었다. 래퍼와 드러머로 구성된 2인조 길거리 연주단이 이동 무대 트럭을 타고 번잡한 영등포시장 일대를 돌며 뉴타운의 엇갈리는 희비를 노래한다. 모래내시장을 무대로 펼쳐진 ‘포터블 키퍼’(2009)에는 래퍼의 활력과 대조되는 무기력한 젊은 남자가 등장한다. 선풍기 날개, 인조모피 등 폐기된 물건들로 만든 쓸모없는 막대를 어깨에 메고 재개발 정비로 폐허가 되거나 공사장으로 변모한 시장터와 시가지를 배회하는 그의 모습에서 무심함과 게으름으로 거부를 수행하는 바틀비의 이미지가 발견된다.

‘S.O.S. - 채택된 불일치’(2009)와 ‘손의 무게’(2010)는 연극성과 영화성이 강조된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전자에서는 승객/관람객을 태운 유람선이 마치 액자소설과 같이 3개의 에피소드-“이름 없는 것들을 내버려 두라”고 외치는 청년들의 집단시위, 은둔처를 찾아 헤매는 한 쌍의 연인, 전향을 거부한 장기수의 외로운 독백-가 장면화되는 3개 지점을 순차 통과하는 사이 선박에 장착된 서치라이트가 개발도상의 한강변의 민낯을 고스란히 비춘다. 후자에서는 ‘점프 컷’식 장면 전환으로 인식의 균열을 시도한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 군중이 북을 치며 비 오는 한강변을 순례하는 미지의 인물을 따라 개발 현장의 구석구석을 탐방한다. 버스 안에서는 흐느끼며 이별을 노래하는 한 여인의 늘어진 몸을 승객들이 손에서 손으로 실어 나른다. 강물, 빗물, 여인의 눈물 등, 흐르는 액체적 이미지들은 적외선 열감지 카메라 샷으로 감각적 체온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게를 영롱한 온도의 색채로 가시화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이 소멸시킨 한강의 기억을 불러내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작가는 분단과 이산, 전쟁과 폭력 등 예민한 정치사회적인 이슈 속에서 은폐된 존재들의 역사로 시선을 돌려 공동체적 상실감을 치유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성찰의 시기를 맞는다. 이 당시 발표된 두 편의 비디오는 이전 시기의 연출 비디오와 다르게, 정치적 사건을 중계한 방송 화면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몽타주 영상 작품이다. ‘절반의 가능성’(2012)에서 작가는 박정희와 김정일, 남북의 두 정치적 우상의 장례식과 그 앞에서 통곡하는, 서로 닮은 양쪽 국민들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남북으로 갈린 두 줄기의 눈물이 ‘연결하는’ 미래, 그 절반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만일의 약속’(2015)에서는 1983년 전 국민의 시선을 텔레비전 앞에 불러모은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사연판을 들고나와 혈육을 찾고자 하는 이산가족의 희망과 절망, 숨 막히는 만남의 순간들 속에서 유예되는 시간을 포착, 영상과 설치로 작품화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개막작, ‘내비게이션 아이디’에서도 역사적 재앙과 집단기억을 소환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혼란기에 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이 보관된 컨테이너, 그 죽음의 ‘동굴’을 비엔날레 앞마당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위령제에 참여한 유족들을 맞이한 사람들은 5·18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이다. 모두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1950년대 부모를 잃은 자식들과 1980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조우시킨 애환의 퍼포먼스이자 30년 세월을 압축한 생의 퍼포먼스를 통해 피부로 전달되는 임민욱 고유의 애도 미학이 발현된다.

3 송상희,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송상희.‘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2017, 3채널 영상 설치,16분) 작가 제공
송상희 ‘공포스러운 비극에 주목’
심리적 외상 들춰내 ‘초혼’하면서
묵시록적 상황서 희망 발견하기도

송상희는 근대성, 근대주의의 징후들과 그것이 내면화시킨 인간적 억압을 진단하고 낙인처럼 각인된 심리적 외상을 들춰낸다. 가부장 체제를 불신하고 남근적 주체들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역사의 희생자와 피해자, 권력 밖에 위치한 여성, 소수자, 하위주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직시하는 체제/제도/문명 비판자로서 그는 재앙적 학살, 강요된 성노동 등 공포스러운 비극의 역사에 주목한다.

송상희의 초기 작업은 부계적으로 운명 지워진 여성의 현실을 풍자한 페미니즘으로 일관됐다. 숙녀가 되기 위한 몸가짐과 착한 딸의 환상을 훈육당하는 몸으로 패러디한 ‘성공을 위한 몸 보정기’(2001)와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짓’(2001)에 이어, 본인이 모델이 되는 일련의 연출사진을 통해 다양한 국면의 여성상을 재현했다. 온몸을 양면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 바닥을 구르며 집 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아내는 ‘바닥 청소’(2002), 강요된 침묵에 의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동두천 유흥가의 여성을 연기한 ‘동두천’(2005)은 각각 가정과 거리의 여성을 대변한다. 월미도 부둣가에서 한쪽 팔에 의수를 단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버스 안내양은 가부장제에서 길들여진 순종적 여성을 표상한다.

2006년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이후, 유럽 문화권에서 인식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된 작가는 나, 여성의 문제로부터 세계를 대상으로 주제적 관심을 확장하고, 드로잉, 텍스트, 사운드, 영상 등 복합매체를 전격 사용함으로써 작품세계의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특히 현장 실사, 자료 수집, 연구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전방위적 리서치가 내용과 양식 면에서 규모가 달라진 작업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변신의 물꼬를 튼 ‘변신 이야기 제16권’(2009)은 총 15권으로 구성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의 마지막 권으로 편찬된 창의적 야심작이다. 태초 피조물들의 진화적 변신 과정을 신과 인간의 사랑, 욕망, 배신, 복수의 이야기로 은유한 고대 신화의 후속판답게, 작가는 태곳적 심해를 유영하는 상상의 생명체들, 인간, 공룡, 고래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파국으로 끝나게 되는 낯선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석유자본과 국가권력이 생태계를 위협하고 인간의 오만과 무지가 결국 지구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 종말론적 서사는 작가의 섬세한 연필 애니메이션과 서정적 내레이션으로 그 중압감을 덜어낸다.

‘변강쇠歌: 사람을 찾아서 2016’(2015~2016)은 한국 민담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상설치 작품이다. 떠돌이 변강쇠와 저주받은 옹녀, 점쟁이, 악사, 각설이패 등 사회로부터 추방된 유랑민들의 설화는 작가가 지금도 소외의 삶을 사는 전쟁포로, 일본군 위안부를 만나 스케치하고 인터뷰한 영상과 병치됨으로써 초시제적 대하 서사로 탈바꿈한다. 1983년 KAL기 격추 사건을 사할린 바다에 을씨년스럽게 떠 있는 신발들로 재현/재연한 ‘신발들’(2011)이 예시했듯이, 그는 세월호 희생자, 지중해 난민 등 특히 해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의 현장을 찾아 영상과 텍스트로 아카이빙하는 일종의 초혼 행위를 통해 무고한 죽음을 애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발표한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2017)는 송상희의 모든 역량이 집결된 총체적 영상설치 작업이다. 현장 탐사와 자료 리서치가 광대해지고, 내러티브의 정치적 메시지와 미학적 수위가 심화되었으며, 아카이브 필름, 다큐멘터리 자료사진과 비디오, 연필 드로잉, 텍스트, 사운드로 공감각적 몽타주 환경을 창출했다. 독일과 폴란드의 강제수용소, 네덜란드에 남아 있는 2차 세계대전 벙커들, 한국과 해외의 원자력발전소들을 답사하고 현지 촬영한 장면들이 분리된 3개의 대형 화면에 교차 상영되는 가운데 관객은 핵전쟁, 아우슈비츠의 집단학살, 탈출선의 난민 살해, 아기농장의 인체실험들이 증언하는 이성과 윤리의식의 추락을 통감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묵시록적 상황이 새로운 생성 에너지의 시작이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아기장수 설화를 도입한다. 부모와 국가에 의해 두 번 죽임을 당하지만 결국 다시 또 살아나는 아기의 초능력을 종말 이후의 구원 가능성으로 예견시키는 데자뷔적 해석에서 여성적 치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애적 모성을 발견한다.

4 김아영의 ‘사변적 픽션’

김아영,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 2019, 2채널 비디오, 23분 4초), 작가 제공
김아영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세계정세 맥락 속 매핑작업 통해
동시대 이슈 환기하며 문명비판

김아영은 한국 근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 또는 지역적 일화를 세계 정세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며 그 상관관계를 일종의 매핑 작업으로 그려낸다. 마음의 작용을 번역하는 심상지도, 변증법적 논증 방식으로 전개되는 사변적 지도로 풀이되는 작가의 매핑 작업은 영토 제국주의, 다국적 자본주의, 신식민주의 등 특정 주제에 관한 첨예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몽타주나 브리콜라주 같은 예술적 방법으로 가공한 각본에 의거하여 사운드, 텍스트,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는 혼성적 음악극이나 영상물로 제작하는 그의 작업은 결과적으로 허구와 사실,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혼합된 분절적이고 분열적인 “사변적 픽션”에 이른다.

초기 사진 작업에서 영상으로 전환한 2010년 이후, 작가는 근대기 유토피아 신화와 그 이면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파열적 증상들을 성찰, 비판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문명 간의 충돌, 동화, 이식으로 요약되는 근대 액체 문명의 유동적 현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나가며 그가 우선적으로 주목한 것은 증기선, 기차, 철도와 같은 물리적 이동 수단이었다. 2011년의 ‘PH 익스프레스’는 제국의 영토 확장을 위한 축지법과 같은 이송 발명품이 초래한 근대화와 식민화의 등식관계를 가시화한 영화적 서사로, 특히 이야기의 무대가 개항기 조선이었다는 지리정치학적 측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제목부터 동아시아 찬탈을 위한 증기선 항로를 일컫는 이 작품은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의 “포트 해밀턴” 항구를 불법 점령했던 외교 사건을 통해 19세기 말 열강들의 힘의 역학관계와 갈등을 폭로하고 있다. 작가는 널리 회자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풍자와 상상으로 극화시킴으로써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급인되는 작가 특유의 사변적 픽션의 도래를 예고했다.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2014~2015)은 사변적 픽션을 음악극으로 번안한 세 버전의 사운드 드라마이다. 여기서는 근대기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개발된 석유를 화두로, 역청 사용의 역사, 석유자본, 한국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 등 석유와 관련된 다방면의 정보를 기초로 작품을 구상했다. 비맥락적 픽션을 도출하기 위해 이번에는 디지털적 우연작동법과 같은 간단한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정적인 서사를 탄생시켰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역청의 이름 ‘제페트’를 수식하는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라는 부제 역시 이러한 알고리즘의 결과물에서 발췌한 것이다. 자신과 알고리즘의 공동 제작으로 이루어진 몽타주 각본을 근간으로 협업 현대음악가의 작곡음과 대사와 코러스를 혼합시킨 이 다중적 음악극은 56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발표된 버전3에서는 시각적 요소를 포함하는 공감각적 음악극으로 실험, 변주되었다.

김아영의 사변적 픽션은 2017년의 ‘다공성 계곡1, 이동식 구멍들’과 2019년의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에서 정점에 달한다. 다공성이라는 개념은 석유 시추에 의해 비어가는 지층 공간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구멍숭숭한 지구, 그 틈새를 타고 흐르는 물질의 이동은 난민 이주와 데이터 이동이라는 동시대 이슈를 환기시키며 작가의 비약적 창조력을 발동시켰다. 지질학적 다공성에 인간적 이주와 데이터 이동을 병치하는 다중적 매핑 작업으로 작가는 근대 식민주의와 현대 신식민주의를 관통하는 자신의 문명비판적 작업을 완결시킨 것이다.

‘다공성 계곡’은 신화적 생명체이자 지하광물의 은유적 주체로서 영원한 이동을 표상하는 ‘페트라 제네트릭스’의 험난한 이주의 무용담을 그린 일종의 공상과학 영상이지만, ‘계곡2’에서 페트라의 존재를 한국으로 도피한 예멘 난민들에 유비시킴으로써 자신의 사변적 픽션에 현실적 맥락을 부가했다. ‘계곡1’에서 다공성 계곡으로부터 이동하다 자신의 복제물과 융합한 후 미지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페트라의 운명은 ‘계곡2’에서는 이주센터를 탈출하여 초월적 존재이자 데이터의 총화인 ‘어머니 바위’를 만나고 그와 결합하는 환상적 결말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무성의 존재 페트라의 자기동일적 융합이나 어머니와의 퀴어한 결합을 종말론적 디스토피아보다는 고대 신화와 디지털 우화가 통합된 숭고의 서사로 파악할 때, ‘다공성 계곡’이라는 이 사변적 픽션(Speculative Fiction)은 결국 사변적 페미니즘(Speculative Feminism)으로 독해되지 않을까?

5 액체적, 유영적, 이동적 흐름의 전복성

임민욱, 송상희, 김아영의 작업은 연구 기반의 학구적 태도와 복합매체 감성에 기반하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다. 또한 직역 대신 의역, 직유 대신 은유를 선호하는 우화적 방식,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읽어내는 성찰적 태도도 유사하다. 소수자와 여성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억압된 자들의 귀환을 고대하는 윤리의식과 재앙과 죽음을 애도하는 숙성된 타자애 역시 이들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액체적, 유영적, 이동적 흐름을 고착되고 경화된 부계적 문명의 벽을 허무는 여성적 기제로 활용한다. 한강, 심해, 항해, 이주 등으로 표상되는 흐름은 비고정적이고 불안정하지만 그런 만큼 전복적 잠재력을 갖는다. 이것이 정치적이고 저항적인 이들의 작업이 페미니즘과 병치되는 미학적 동기이자 실천적 결과이다.

■김홍희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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