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 나사빠진 정부가 초래한 요소수 대란..국가 손실보상 거론

임애신 2021. 11. 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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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라 수주 전 인지..보고는 中수출금지 엿새 뒤에
김부겸 총리 "초기 적극대응했더라면..아프게 반성"
산업부 "3000여개 품목 소수인력으로 분석 어려워"
정치권, 정부 책임 지적..국가손실보상 필요성 제기

[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중국의 요소수 수출 금지를 알면서도 늑장 보고를 했고, 뒤늦게 이를 인지한 산업통상자원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요소수 품귀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서울시 쓰레기 수거차량, 시내버스 운행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의 한 버스 공영차고지에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들이 다수 주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에 요소수 대란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이 요소 수출을 금지한 탓이지만,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대란 수준의 요소수 부족을 겪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요소수 공급 대책을 강구할 골든타임을 놓친 채 전(全) 부처가 사태 수습에 나선 사이 정치권에서는 요소수 품귀 대란의 책임론을 따지기 시작했고, 국가 손실보상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코트라 늑장 대응 “수출금지 알고 늦게 보고”

코트라는 지난달 초 중국의 요소수 수출 금지 가능성을 인지했다. 그리고 같은 달 15일 중국이 사실상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동안 검사를 하지 않던 요소 등 비료 품목에 출입국검험검역기관의 검역을 의무화한 것. 요소는 석탄에서 추출한 암모니아로 생산하는데, 중국 정부는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조치 이후 석탄 공급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급등하자 이런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요소수의 사실상 대부분인 97%가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산업부가 요소 수출 금지를 알게 된 것은 중국의 조치가 내려진 엿새 뒤인 10월21일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21일 중국산 요소 수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주중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당장 수입 길이 막히자 산업부는 비상이 걸렸다. 수출 금지를 인지한 21일 당일 현지 공관에 세부 동향 파악을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27일엔 요소 사용업체와의 간담회, 29일엔 통상교섭본부장과 주한 중국대사 간 면담, 이달 2일에는 요소 수급 대응 관계부처 회의, 4일엔 국내 요소수급 수입업계 간담회 등을 잇달아 열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물류 대혼란…국무총리 “아프게 반성”

그러나 결과는 요소수 품귀에 따른 대혼란이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와 국민에 돌아갔다. 산업계와 경유차를 소유한 운전자와 화물차 운전자, 소방서를 비롯해 요소를 비료로 사용하는 농업계 등은 요소 부족 가능성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중고사이트에서는 요소수가 수십 배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사재기도 발생했다.

김부겸 국무총리(사진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코트라가 중국의 수입금지를 인지했을 때 대비책을 세웠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8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에서 “코트라의 늑장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면서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긴장감과 절박감이 하나도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코트라나 산업부가 요소 수입이 막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물류난, 식량 대란 등의 파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이를 일부 인정했다.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 질의에서 “초기에 적극성을 띠고 했다면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한 뒤 “아프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요소수 품귀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요소수 수급 안정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하루 뒤인 9일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해외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민 달래기에 나섰다.

국가 손실보상 주장에 산업장관 “사태 수습 우선”

이번 요소수 대란의 원인이 정권 말 관료들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학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가 6개월 남은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움직이는 상황은 정부 예산을 쓰는 사업, 연구개발(R&D) 지원처럼 향후 업적이 될만 한 것들”이라며 “특정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때 겪어 놓고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9일 전북 익산시 실내체육관 앞에 요소수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대기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선 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들어가는 3대 핵심 소재 공급이 어려워졌다. 품목이 3개에 그쳤지만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소재인 데다 수입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요소수 대란이 지속할 경우 국가가 손실보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나온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 대해서는 사후에 판단할 문제이고, 손실보상은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정부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겠지만 지금은 사태 수습과 시장 안정에 노력할 때이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산업부 “현 시스템에서 상시 관리 불가능”

산업부도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나름 할 말은 있다. 요소를 포함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수입 품목이 3000개 가까이 된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과 한국무역협회가 올 1~9월 기준 국제 품목분류 코드 기준 수입품 1만2586개를 분석한 결과, 3941개(31.3%)가 특정 국가 의존도 80%를 넘었다. 이 중 중국이 1850개로 약 47%를 차지했다.

현실적으로 `경고 신호`가 들어오기 전에 수천 개의 품목 중 어떤 품목이 문제가 될 지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산업부의 설명이다. 부처 관계자는 “업계 쪽에서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부분을 전부 상시 관리하는 것은 현재 대응 시스템에서 한계가 크다”고 토로했다.

(사진=산업부)

요소를 들여다 보는 조직은 소재부품장비협력관 산하 화학산업팀인데, 이 팀 인력은 6명이 전부다. 그나마도 업무가 분장돼 있어 평소 요소 관련 실무를 보는 인력은 이보다 더 적다. 소수 인원이 3000개가 넘는 개별 품목의 대응 전략을 파악하고 세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요소는 일본의 수출 규제 때처럼 기술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품목이 아니다. 요소는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이 떨어져 생산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가격 경쟁력이 밀려 업계가 생산을 하나씩 접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요소가 반도체와 같은 전략물자가 아닌 데다 가격이 1t에 20만원 안팎으로 저렴해 공격적으로 국내에서 생산 인프라를 확대하기도 조심스럽다.

마스크가 그 방증이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지만 공정 확대로 과잉 생산 시설과 마스크 가격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범용 제품의 맹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향후 요소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금방 나올 나오거나 석탄 가격이 하락하면 중국이 수출 규제를 풀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국내에 생산시설을 확대하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부는 우선 요소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범부처 합동으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요소수 불법 유통 행위에 대한 합동 단속을 벌인 지 하루 만에 매점매석행위 업체 1곳을 적발하고, 수입업체가 보관하던 요소 3000톤(t)을 확보했다. 차량용 요소 2000톤 중 700톤은 업체와 협의해 이번 주 요소수 생산을 마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호주에서 요소수 2만7000ℓ를, 베트남에서 200t을 각각 수입하기로 했다.

임애신 (vam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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