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의 용병술.."두산인프라 임원 먼저 승진"

이유섭 2021. 11. 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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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인사 두산인프라 13명
현대건설기계 4명 그쳐 눈길
'우리가 인수된 듯' 볼멘소리
권 회장, 임원 긴급회의 소집
"세계 1위 기회 생겼다" 설득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계열사 임원 인사를 단행한 지난달 21일, 계열사 두 곳에서 임원들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 8월 현대중공업그룹의 새 식구가 된 현대두산인프라코어에선 12명의 상무 신규 선임을 포함해 줄잡아 13명이 임원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현대중공업그룹 건설기계 부문의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현대건설기계에선 4명(신규 선임 3명 포함)에 그쳤다. 두산인프라코어가 현대건설기계보다 직원은 1300여 명, 임원은 2배 더 많기는 하다. 하지만 같은 날 인사를 한 그룹 내 주력 계열사 현대중공업의 신규 임원도 15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그룹 인사 후 현대건설기계 일각에서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이 바뀐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왔고, 이를 전해 들은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사진)이 인사 단행 일주일 뒤 현대건설기계 임원들을 소집했다. 권 회장은 임원들을 달래기보다 긴 호흡으로 관점을 바꾸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평소 '직설화법' 그대로였다.

권 회장은 "당장은 서운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함으로써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을 명심해 달라"며 "결과적으로 여러분에게도 성장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를 합쳐도 현재 전 세계 건설기계 시장에서 점유율(3.6%)이 9위 수준에 그친다.

권 회장은 "두 회사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큰 목표를 바라보고 서로의 DNA를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2~3년 내 물리적·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건설기계 회사가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성장하면 세계적 기업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인수·합병 이후 모범 사례로 들었다.

과거에 비해 유대 관계가 느슨해지긴 했지만 범(汎)현대가인 현대차그룹을 벤치마킹 모델로 언급한 셈이다. 권 회장은 이 자리에서만 세 차례에 걸쳐 "2025년까지 매출 10조원, 세계 시장 점유율 5%를 달성해 세계 5위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원 승진 인사 폭이 크긴 했지만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한 권 회장 생각을 알고 있던 현대중공업그룹 내에선 "어느 정도 예상된 인사"라는 반응도 나왔다. 한 그룹 관계자는 "인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권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인력과 연구개발(R&D) 역량 등 기술력에 여러 차례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를 온전히 흡수해야 하는 입장에선 과감한 (인사)베팅을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마무리한 뒤 직원들이 처음 출근하는 날에 환영 편지를 보내 "건설기계 사업에서도 조선 사업과 마찬가지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격려하고, 임직원 가족에게 방짜유기 수저 세트와 환영 카드로 구성된 선물을 전달했다.

한편 현대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는 올 들어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곳곳에서 쌍끌이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인수 작업 때문에 제대로 영업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지난 9월까지 굴착기 등 각종 건설장비 2만7900대를 국내외에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기계는 작년보다 무려 43% 확대된 2만2600대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신흥 시장(76.7%)에서, 현대건설기계는 북미(80%)에서 특히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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