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구자혜 연출이 명동예술극장을 '박살'낸 이유는

장병호 입력 2021. 11. 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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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연출
지난달 22일 개막 후 극과 극 반응 쏟아져
동물 고통 대상화 피하고자 실험적 방식 시도
"소수자 통한 문제제기 위해 연극 만드는 것"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구자혜 연출이 기어이 명동예술극장을 박살냈다.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하다.” “너무 난해하고 어렵고, 공연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국립극단 신작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를 본 한 관객들이 SNS에 남긴 후기다.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연극들 중 이토록 관객 사이에서 극과 극을 오가는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은 최근 몇 년 사이 없었다.

명동예술극장을 박살낸 이유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관객 반응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닌데, 이번엔 명동예술극장 공연이라 그런지 관객 반응을 찾아보게 되네요.”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구자혜 연출은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 대한 관객들의 엇갈린 반응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관객 사이에서 극호와 불호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며 “그래도 ‘명동을 부쉈다’는 반응은 좋았다”고 덧붙였다.

명동예술극장은 그동안 드라마가 강한 정통연극을 주로 올려왔다. 국립극단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고선웅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최근 ‘오징어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오영수를 비롯해 오현경, 손숙 등 연극계 원로 배우들이 출연한 ‘삼월의 눈’ 등이 그렇다.

이런 명동예술극장에 연극의 관습을 깨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구 연출의 신작이 올랐으니, 관객들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구 연출은 “그동안 명동예술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공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구자혜 연출(사진=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인간 중심의 사회에서 동물의 시각을 빌려 ‘대상화’(사람, 동물 등의 존재를 사물이나 물건의 형태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련이 우주선에 태워 보낸 떠돌이 개 라이카,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성화를 점화하는 과정에서 불에 타 죽은 비둘기, 로드킬을 당하는 고라니, 완벽한 ‘뷰’를 위해 투명하게 만든 유리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새의 이야기를 특별한 스토리 없이 160분간 나열한다. 전박찬, 성수연, 이리, 문예주 등 11명의 배우들은 연기를 주고 받지 않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대사를 관객을 향해 외친다.

“이번 작품은 사실 3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누군가 죽었고, 다쳤고,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를 기존의 드라마적인 연극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지양하고 싶었어요. 배우들과 어떻게 하면 동물의 고통을 대상화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했거든요. 고통 받는 동물의 목소리를 관객에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구 연출의 연출 스타일은 기존 연극에 익숙한 관객에겐 낯설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구 연출은 “의도적으로 기존 연극의 문법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공연이라면 잘 짜인 드라마로 연극적인 호흡을 주고 받는 연출이 맞겠지만, ‘로드킬 인 더 씨어터’처럼 극장 밖에 실재하는 고통을 다룰 때에는 이러한 방식을 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구 연출은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대표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무대에 올려왔다.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 사건을 다룬 ‘7번 국도’,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등이 대표작이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제57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제57회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을 수상했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구자혜 연출(사진=국립극단)
“저는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공연을 만드는 것 같아요. 소수자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것이 드라마적인 형식이든 실험적인 방식이든 상관 없이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구 연출은 “그동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이에 대한 연극을 올려보고 싶다”며 “또 기회가 된다면 연극 이외의 장르에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오는 14일까지 공연한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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