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도축장을 안보고 육식을 말하지 말라

이규화 2021. 11. 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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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 창세기 1장에는 조물주가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지상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기록이 나온다.

인간은 이를 근거로 하나님도 가축을 잡아먹는 것을 권했다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적어도 수만년 인간의 몸에 배인 육식을 끊고 채소와 곡식만 먹는다는 것은 생래적 육식기피자 혹은 '정신적으로 고양돼 육식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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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리너 구스타브손 지음/장계경 옮김/갈매나무 펴냄

기독교 성경 창세기 1장에는 조물주가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지상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기록이 나온다. 인간은 이를 근거로 하나님도 가축을 잡아먹는 것을 권했다고 합리화한다. 채식 역시 생명을 끊는 것에선 다르지 않냐 반문하겠지만, 채소를 거두는 것과 가축을 죽이는 것은 정서적 수용성에서 천양지차다.

인간에게 육식은 천형처럼 들러붙어 있다. 인간이 언제부터 육식을 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능적 육식에 대한 반성은 지속가능성의 맥락에서도 고찰되고 있다. 소고기 1kg를 얻기 위해 1만5000리터 이상의 물이 소요된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에 따르면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25.6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그 못지않게 미식 목적으로서 고기 먹는 것을 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권유되는 것이 '금욕적 비건'(채식주의자)이다. 그러나 적어도 수만년 인간의 몸에 배인 육식을 끊고 채소와 곡식만 먹는다는 것은 생래적 육식기피자 혹은 '정신적으로 고양돼 육식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실제적 대안이 대체육이다. 최근 대체육은 괄목한 진전을 이뤘다.

책은 이러한 인간의 노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음을 단 몇 쪽만에 설득한다. 책엔 가축의 신음소리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축축한 공기와 저벅저벅한 바닥에서 올라오는 비린내를 피할 수 없다.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도축을 앞둔 가축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한다. 저자는 동물의 병을 고치다가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축장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천의 생명이 순식간에 소멸하는 곳에서 저자는 목숨을 빼앗기는 존재의 증인이 된다.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와 감정전달이 뛰어나다. 저자는 효율만을 추구하고 감정을 남김없이 도려내는 곳에서도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비인간적 공장식 축산과 무자비한 도축에 변화가 올지 모른다는 희망의 불을 밝힌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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