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미러클'은 '사이클'이다
[스포츠경향]
지난 10월 말, 정규시즌 마지막 주간. 두산은 4위 사수를 위한 최후의 싸움을 벌이면서 유리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포스트시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투수 놀음’이라는 가을야구에서 앞세울 투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수 워커 로켓이 부상으로 미국으로 돌아간 가운데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 역시 피로 누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다.
두산 구단 내부에서도 일단 와일드카드 시리즈로 시작해야할 포스트시즌에서 팀의 ‘생존 기간’를 길게 보지 못했다. 다만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희망 요소’ 하나를 얘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중 한 관계자는 “그래도 시즌이 다 끝나면서 타격 사이클이 올라오는 흐름이다. 좋은 쪽으로 작용할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산은 지난 9월 이후 급반등하며 7위에서 4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지만, 10월로 접어들면서는 다시 페이스가 꺾였다. 특히 타선의 하락세가 뚜렷했다. 10월5일부터 10월24일까지 20일간 팀타율 0.235로 답답한 경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10월25일 이후 마지막 6경기에서 팀타율 0.272로 상승곡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톱타자 정수빈의 상승세가 이어진 가운데 극도로 부진하던 허경민이 주간 타율 0.385로 살아나고, 타선의 중심인 김재환이 주간 타율 0.389로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혹시나’ 했던 그 기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두산의 정규시즌 막판 타격 ‘사이클’은 가을야구로 이어져 ‘미러클’이 되고 있다.
가을야구 들어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1승1패,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1패로 압도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승기를 잡은 경기에서 타선이 대폭발하는 흐름을 타고 있다. 지난 2일 키움와 와일드카드 잠실 2차전에서 20안타를 뽑아내며 16-8로 대승했고, 지난 7일 LG와 준플레이오프 잠실 3차전에서는 15안타를 터뜨리며 10-3으로 완승했다.
정규시즌 막판 오름세를 탄 정수빈이 준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462(13타수 6안타)로 MVP에 오르는 등 10월을 마치며 주목받은 타자들의 기운이 그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체력적으로 열세인 하위 팀이 마운드의 힘만으로 상위 팀을 꺾어가기는 어렵다. 미치듯 터지는 타선의 힘이 필요한데, 지금 두산이 그와 흡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올라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선 경험이 2001년과 2015년 등 이미 두 차례 있다.
특히 첫 ‘업셋’ 우승을 일궈낸 2001년 포스트시즌은 올해 가을야구의 방향점으로 삼을 만하다. 그해 두산은 정규시즌 승률 0.508(65승5무63패)의 3위에 불과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꺾은 뒤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제치고 한국시리즈로 올라가 삼성을 4승2패로 제압하고 극적으로 우승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갈베스와 임창용, 배영수 등 선발진이 튼튼한 삼성에 마운드에서 열세였지만, 1차전부터 6차전까지 한 경기도 빠짐 없이 10안타 이상을 뿜어내는 화력으로 대어를 잡았다. 특히 4차전에서는 19안타로 18점을 뽑고, 5차전에서는 16안타로 14점을 얻는 괴력을 보였다.
이번 가을, 두산의 사이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는 작잖은 변수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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