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정관수술'에 요소수 '셀프제조'까지.. 차악 택하는 차주들

이은영 기자 2021. 11. 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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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화물차주, 각종 임시방편 공유
저감장치 개조 적발시 징역 1년·벌금 1000만원
"SCR 개조는 최후의 수단, 요소 확보 서둘러야"
암암리에 (저감장치를) 풀고다니는 화물차들이 있다. 장치가 고장날 수도 있다고는 하는데, 당장 차를 세우면 생계가 끊기니 그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5.5톤 트럭을 모는 화물차 기사 천모(51·경남 창원)씨는 최근 차량의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를 개조하기 위해 업자를 수소문 중이다. 공항리무진 기사 일을 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실직한 뒤 빚을 내 화물 운송 일을 시작했다는 천씨는 “2~3일에 10리터짜리 요소수 한 통은 쓴다. 저감장치 개조가 불법인 줄은 알지만 차를 세우면 파산할 지경”이라며 “계약이 끊기는 것보단 개조 비용과 벌금을 내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씨는 “당장 밥줄이 끊길 처지에 놓인 기사들 사이에선 ‘요소수가 없으면 증류수를 넣어도 된다’, ‘산업용이라도 써도 된다’ 등 온갖 잘못된 정보들이 공유되는데, 정부는 어떤 대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7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서 한 화물차 운전자가 정비를 위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발(發) 요소수 품귀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화물차주들이 불법 개조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SCR 조작은 최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불법행위지만, 요소수를 구하지 못한 차주들이 이를 감수하고도 불법개조 업체를 찾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자동차 고장을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정보까지 나돌아 요소수 품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8일 화물차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정관수술’ 문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정관수술은 요소수 없이 화물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장치를 개조하는 것을 일컫는 은어(隱語)다. 장치에 부품을 추가로 달거나, SCR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조작해 요소수 소모량을 줄이는 것이다.

차주들에 따르면 개조 가격은 당초 150만원 선이었으나 수요가 늘면서 최대 300만원선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비용이 비싸지만 당장 요소수를 구하지 못하면 차량 운행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SCR 개조를 찾는것이다. 한 화물차 차주는 “당장 내 식구 밥 굶게 생겼는데 뭔들 못 하겠느냐”며 SCR 개조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은 자동차의 배출가스 관련 장치를 탈거하거나 훼손, 변경, 임의설정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적발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저감장치를 개조하면 유해물질이 포함된 매연이 최대 10배까지 배출돼 환경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매연 배출 기준을 넘긴 차량 3만1388대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정부는 요소수 수급이 안정될 때까지 불법 자동차 일제단속을 연기했다. 당초 국토교통부는 환경부, 경찰청 등과 함께 전국 1750여곳의 민간 자동차검사소를 대상으로 자동차 검사 결과 조작 여부 등을 집중 단속할 예정이었다. 다만 SCR 조작은 한시적으로라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유차 SCR 프로그램 해지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검토한 바로는 단기적으로 추진하기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한 유튜버가 요소비료를 이용해 요소수를 만들고 있다. 지난 5일 공개된 이 영상은 게시 사흘 만에 조회수 2만여회를 기록했다. /유튜브 캡처

요소수 대신 물을 넣어 주행할 수 있다거나, 요소비료를 물과 섞어 요소수를 만들 수 있다는 정보도 온라인 상에서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한 유튜버는 지난 5일 동영상을 올리고 정제수에 요소비료를 녹여 요소수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 유튜버는 “요소비료에는 요소 함량이 46%이니 비율만 잘 맞추면 요소수를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다”며 정제수 2리터(L)에 요소 비료 644그램(g)을 넣고 섞는 모습을 보였다. 시중에 파는 투명한 차량용 요소수와 다른 모습의 희뿌연 액체가 나왔다. 이 영상은 게시 사흘 만에 2만1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온라인에서는 ‘요소수 대신 물이나 죽염수(水)를 넣어도 된다’는 정보도 나돌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농사용 요소비료는 알갱이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요소 겉면에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코팅돼 있다. 물과 요소 비율을 정확히 맞춘다고 해도 코팅 성분이 제거되지 않은 채 쓰이면 발암물질이 그대로 공기 중에 배출되고 장치 이상을 유발한다. 요소수 대신 물이나 죽염수를 넣어도 고장이 나긴 마찬가지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체적으로 만든 요소수나 산업용 요소수는 차량용 요소수보다 순도가 떨어진다. 순도가 달라지면 내부에 불순물이 쌓여 장치가 고장나게 된다”며 “고장 시 수리 비용은 대형화물차의 경우 최대 1000만원에 달할 수 있어 차량용 요소수 이외의 액체 사용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물차 차주들은 요소수 대란이 해결되기 전까지 SCR 개조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SCR 개조 허용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정부가 요소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SCR을 푸는 방법이 차마다 다르다. 또 대부분의 장치가 독일 ‘보쉬’사 제품인데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조작을 지원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또 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 약속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최후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정부의 재고 확보가 급선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두세 달 안에는 재고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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