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이의 높은 증식력, 숨겨진 원인 찾았다

곽노필 2021. 11.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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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RNA 감싸고 있는 단백질 변이가
세포내 바이러스 생산 51배 늘려
코로나19 바이러스 모형. 바이러스 껍질 안쪽의 보라색 물질이 뉴클레오캡시드, 오렌지색 가닥이 유전물질 RNA다. 출처=프로메가(promega)

1년여 전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델타 변이체는 이전 변이체보다 2배 이상 전염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염력이 높아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체내 세포 침투 후에 증식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이다. 델타 변이 감염 초기의 바이러스 농도가 변이 전 바이러스보다 1000배에 이른다는 연구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유전자편집 도구 크리스퍼-카스9을 개발해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UC버클리) 연구진이 그 수수께끼의 일부를 풀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유사입자 및 세포 실험을 통해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껍질 안쪽에 있는 뉴클레오캡시드단백질(N)에 일어난 돌연변이가 전염력을 강화시킨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최근 국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뉴클레오캡시드단백질은 바이러스의 유전물질(RNA)을 감싸고 있는 물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체의 높은 전염력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바이러스 표면에 삐죽이 솟아 있는 돌기단백질(스파이크단백질)에 초점을 맞춰 왔다. 돌기단백질에 분석이 집중된 이유는 돌연변이를 조사하는 도구로 렌티바이러스(포유류에 서식하는 RNA 바이러스)에 기반한 유사바이러스를 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 유사바이러스는 표면에 코로나바이러스 단백질을 발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렌티바이러스는 코로바이러스의 4가지 구조단백질 중 다른 3개의 단백질(뉴클레오캡시드, 막, 외피)은 발현시키지 못한다.

다우드나 연구진은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물질 RNA만 빼고 4가지 구조단백질을 다 갖고 있는 바이러스 유사입자(VLPs)를 개발했다.

이 입자는 겉으로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세포와 결합해 침투할 수도 있다. 대신 유전물질이 없어 복제 능력은 없다. 따라서 다른 세포까지 감염시키지는 못한다. 한 번 침투하면 그걸로 끝이다.

연구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분석 도구를 추가했다. 세포에 들어가면 밝게 반짝이도록 변형한 ‘형광 메신저RNA’ 조각을 만든 것. 이 유전물질 조각을 이용하면 유사입자에 감염된 세포가 반짝이는 정도를 통해 메신저RNA가 세포 속으로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경우, 실제로 체내에서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는 데 사용되는 것은 바이러스 입자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세포로 더 많은 유전물질을 넣게 되면 생산되는 바이러스 입자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바이러스 껍질 안에서 무슨 일이?

연구진은 다양한 돌연변이 단백질로 실험하던 중 뉴클레오캡시드의 한 돌연변이에서 놀라운 현상을 포착했다.

뉴클레오캡시드단백질은 바이러스 복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평소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안정적으로 감싸고 있다가 필요할 때 방출해준다.

알파, 베타, 델타 등 모든 관심 및 우려 변이에는 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7곳에서 돌연변이가 관찰됐다. 연구진의 관찰 결과 델타의 뉴클레오캡시드 돌연변이 중 R203M가 유전물질 전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R203M이란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의 아미노산 가운데 203번 아미노산이 아르기닌(R)에서 메티오닌(M)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다우드나 박사는 “유사입자가 내는 빛의 세기를 분석한 결과, 델타 변이의 뉴클레오캡시드에서 발견된 R203M 아미노산이 변이 전 바이러스에 비해 10배나 더 많은 메신저RNA를 세포에 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영국과 브라질에서 시작된 알파, 감마 변이체에 감염된 세포가 내는 빛의 세기는 각각 7.5배, 4.2배로 델타 변이보다 약했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실험실에서 R203M 변이가 들어 있는 실제 코로나바이러스를 폐 세포에 주입한 뒤 지켜봤다. 그 결과 이 바이러스는 원래의 바이러스보다 51배 더 많은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

결국 돌기단백질 변이가 세포에 들어가는 수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뉴클레오캡시드단백질 변이가 바이러스 방류량을 늘리면서 델타 변이의 감염력을 크게 강화시킨 셈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감염 예방과 치료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워윅대 로렌스 영 교수(바이러스학)는 ‘데일리메일’에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을 포함하는 2세대 백신의 개발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 실험 시스템을 한 차원 개선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4가지 구조단백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감염성이 없는 바이러스 유사입자로 더 안전하고 간편한 실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록펠러대 찰스 라이스 교수(바이러스학)는 ‘사이언스’에 “새로운 바이러스 유사입자가 언제나 실제를 그대로 흉내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엔 실제 바이러스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새로운 도구가 코로나비이러스 조립을 연구하고, 이를 방해하는 약물을 찾는 훌륭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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