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한국GM에 8000억원 투입한 산업銀, 쌍용차엔 인색.. '이중 잣대' 논란

연선옥 기자 2021. 11.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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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투자하겠다는 GM, 지금은 철수 가능성 언급

쌍용차를 인수하기로 한 에디슨모터스가 인수합병(M&A) 인가가 나기도 전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자금 지원을 언급했다가 산은이 반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산은은 에디슨모터스가 자금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자금 지원은 에디슨모터스의 자금 조달 내용과 사업 계획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산은이 쌍용차 지원 가능성에 원칙론을 들고 나오자 업계에서는 2018년에 산은이 한국GM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사례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에디슨모터스가 자금 지원 규모로 언급한 8000억원은 산은이 당시 한국GM에 출자한 자금과 비슷한 규모다. 같은 자동차 업체인데 산은이 다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쌍용차 인수한 에디슨 강영권 대표

에디슨모터스의 강영권 대표는 지난달 쌍용차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은이 쌍용차의 자산을 담보로 7000억~8000억원을 대출해주면 좋겠다”며 “신용 지원도 아니고 자산을 담보로 대출해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안될 것이 없다. 산은에 대출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강 대표의 발언 직후 산은은 이례적으로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인수 협의 시작도 전에 산은 지원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산은은 “쌍용차는 현재 법원과 회사 주관하에 회생 인가 전 M&A가 진행 중으로 현재까지 법원, 회사 또는 에디슨모터스로부터 어떠한 자금지원 요청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쌍용차 인수 작업이 시작되는 초기 단계에 국책은행과 논쟁하는 모양새가 되자 강 대표는 곧바로 자신의 발언을 해명했다. 강 대표는 “당시 자금 지원을 언급한 것은, 쌍용차 인수 이후 필요한 운영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내놓은 것”이라며 “꼭 산은이 아니라도 건전한 자산을 담보로 시중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에디슨모터스는 지난 2일 인수금액의 5%인 155억원을 계약금으로 납부하고 쌍용차와 M&A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는 이동걸 산업은행장./연합뉴스

쌍용차에 대한 산은의 자금 지원 가능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자, 업계에서는 2018년 산은이 한국GM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사례가 회자되고 있다.

정부와 GM 본사는 2018년 5월, 한국GM을 살리기 위해 총 7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2월 한국GM이 군산 공장을 기습적으로 폐쇄하자 우리 정부와 GM이 3개월간 협의를 벌인 끝에 내놓은 결정이었다. GM은 총 64억달러를 투자하고, 산은도 지분율에 맞춰 7억5000만달러(약 80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산은은 두 차례에 걸쳐 한국GM에 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산은이 한국GM에 자금을 투입한 것은 정부가 GM과 협상에 나선 결과였다. 당시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한 것은 우리나라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둔 시점이었는데, 국내 최대 외국인 투자 기업이 철수할 경우 고용 등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신속한 자금 지원으로 이어졌다.

산은은 한국GM과 달리 쌍용차에는 강도 높은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산은은 쌍용차 등 자금난에 빠진 기업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 관계자의 책임 분담, 지속 가능한 정상화 방안 등 세 가지 원칙을 내세우는데, 쌍용차는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게 산은의 판단이다. 이전 쌍용차의 대주주였던 마힌드라 역시 경영난을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산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원을 받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로 들어갔다.

한국GM은 2018년 본사 GM과 산은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지원 받고도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GM 협력업체 모임인 한국GM 협신회가 지난해 한국GM 노조 파업 당시 생존을 위한 호소문을 회사 관계자들에게 배포하는 모습./연합뉴스

올해 초 이동걸 산은 회장은 쌍용차 지원에 대해 “노조가 단체협약을 3년마다 하는 것에 동의하고, 흑자가 나기 전까진 모든 쟁의행위를 중지하겠다는 각서를 내야만 지원하겠다”며 “이 두 조건을 따르지 않으면 산은은 단돈 1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에 쌍용차 노사는 경영정상화 시점까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노동조합 무쟁의를 확약하는 한편 단체협약 주기도 3년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동걸 회장은 “쌍용차가 자구안을 마련했지만, 우리가 판단하기에 훨씬, 한참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사업계획 없이 자구안만으로 경영정상화를 판단하긴 힘들다”고 했다. 산은 내부에서는 2019년 7월에 신차 개발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1000억원을 5년 만기로 대출해줬지만, 자금 지원 효과가 사실상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산은이 한국GM과 쌍용차에 다른 잣대를 대는 이유는 이들 회사에 대한 산은의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산은은 쌍용차 지분이 없고 채권만 갖고 있지만, 한국GM은 산은이 2대 주주로 돼 있다. 작년말 기준으로 GM이 한국GM의 지분 76.96%를 갖고 있고 산은은 17.02% 지분을 갖고 있다. 과거 대우자동차 채권자였던 산은은 2002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때 출자에 참여해 주주가 됐다. 당시 GM이 4억달러(67%), 채권은행단이 1억9700만달러(33%) 현금 출자했다.

산은은 십년 넘게 경영 부실을 겪어온 쌍용차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산은이 과거 다른 기업을 지원한 사례를 보면 이중잣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산은은 한국GM에 투자할 당시 GM이 국내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고용이 확대되고 관련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GM은 당시 합의한 투자 계획을 완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사 갈등을 빌미로 한국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 매각 과정에서 산은이 내세우는 원칙은 틀린 말이 없지만, 한국GM에 지원한 결과를 보면 이중잣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과거에 엄격한 원칙 없이 이뤄진 지원이 결국 산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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