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시학'은 그를 여전히 살아있는 시인으로 만들었다

한겨레 2021. 11.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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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3살 프로젝트 : 김수영][거대한 100년 김수영] 24 죽음
늘 죽음에 둘러싸여서도
피하지 않고 깊게 성찰
독창적인 해석으로
그만의 시학 완성해
<문학예술> 1957년 4월호에 실린 김수영 시 ‘눈’ 발표본. 맹문재 제공

우리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대체로 죽음을 멀리한다. 물론 가까운 이들이나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보면서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내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 자체가 죽음조차 ‘거부당한 죽음’으로 만들면서 사람들을 무한한 속도전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문단에 등장하여 1968년에 생을 마감한 시인 김수영은 늘 죽음에 둘러싸여 있었다. 김수영의 형들은 모두 아주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았고 아우 중에서는 6·25 전쟁 중에 행방불명된 이도 있었다. 김수영 자신도 의용군에 들어갔다가 죽음의 한계상황까지 갔고, 이후 2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죽음의 고비를 겪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수영은 교통사고라는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김수영은 자신을 둘러싼 죽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깊이 성찰하면서 죽음의 시학을 완성하였다.

김수영 시론의 특이한 점은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말할 때나 참여시를 내세울 때나 모두 죽음을 중심으로 해명한 점에 있다. 김수영은 “모든 시론은 이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는 모습과 행방과 그 행방의 거리에 대한 해석과 측정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고, “모든 시는―마르크스주의의 시까지도 합해서―어떻게 자기 나름으로 죽음을 완수했느냐의 문제를 검토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상 ‘‘죽음과 사랑’의 대극은 시의 본수(本髓)―1967년 10월 시평’)라고 하였다. 그는 현대시 모더니티의 중요한 요인으로 죽음을 들었으며, “참여시 같은 것을 볼 때, 그것이 죽음을 어떤 형식으로 극복하고 있는지에 자꾸 판단의 초점이 가게 된다”(‘참여시의 정리―1960년대의 시인을 중심으로’)고 하였다.

그러면 김수영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던 것일까? 김수영은 죽음을 우선 삶에 대한 각성의 계기로 삼았다. 이 점은 그의 초기 시 ‘공자의 생활난’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시에서 그는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죽음은 ‘바로 봄’에 대응한다. 이 시는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에 대한 패러디인데, 사물을 “바로 보마”라고 한 진리에의 의지는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결단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

<사상계> 1960년 3월호에 실린 김수영 시 ‘파리와 더불어’ 발표본. 맹문재 제공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의 전통을 찾아보면서 그가 보고자 한 것 역시 죽음에 비추어 본 삶이었다. 가령 성서에서 “그대는 흙이니라, 머지않아 그대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거나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들은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고 한 것, 이집트에서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 미라나 사람의 해골을 갖다 놓은 습관, 로마 장군들이 개선 행진 때 전차에 노예를 태워 끊임없이 죽음을 환기하게 한 관습 등과 같은 메멘토 모리 전통을 김수영은 “끊임없이 각성된 생명을, 끊임없는 새로운 출발을 독려”(산문 ‘죽음에 대한 해학’)하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이처럼 김수영에게 죽음은 삶을 깨어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어떻게 잘 죽느냐―이것을 알고 있는 시인을 “깨어 있는” 시인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완수한 작품을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작품”(이상 ‘‘죽음과 사랑’의 대극은 시의 본수’)이라고 하였다. 그가 “정신이 집중될 때가 가장 멋있는 순간”이라면, “죽는 때가 가장 멋있는 때”(이상 산문 ‘멋’)가 된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죽음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고서는 온전한 형상이 보이지 않으며”, “모든 것과 모든 일이 죽음의 척도에서 재어지게 된다”(이상 산문 ‘나의 연애시’)고 생각하였다.

‘신시론’ 동인 제2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 1949년 4월)에 실린 김수영 시 ‘공자의 생활난’ 발표본. 맹문재 제공

김수영은 현대에 거부당한, 그래서 사라진 죽음을 일상 곳곳에서 찾고자 하였다. 김수영은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 있는,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한,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는 병풍(이상 ‘병풍’)에서도 죽음의 그림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또한 ‘눈’에서는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고 하여 우리가 죽음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김수영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파리 소리에서도 죽음의 흔적을 보는데, 이것은 그 자신이 “파리의 소리 없는 소리처럼” “죽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상 ‘파리와 더불어’)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수영은 점차 죽음이 새로운 생성을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조그마한 꽃잎들의 죽음 속에서도 죽음이 끝없이 거듭되는 것을 본다. “사실은 벌써 멸(滅)하여 있을 너의 꽃잎 위에/ 이중의 봉오리를 맺고 날개를 펴고/ 죽음 위에 죽음 위에 죽음을 거듭하리”(‘구라중화’). 이렇게 죽음은 끝없이 지속되며, 그것은 다시 “낡은 것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순간”(산문 ‘생활 현실과 시’)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김수영에게 죽음은 더 이상 공포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가령 그는 누이의 방에 오래도록 걸려 있는, 오래전에 죽은 “‘동생의 사진’을 보고” “몇 번이고 그의 진혼가를 피해 왔다”고 하였지만, 마침내 죽은 동생의 사진을 “곰곰이 정시(正視)하면서” “우스운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우스워하지 않고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이상 ‘누이야 장하고나!’)라고 토로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새로운 생성을 낳기에 김수영은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으며, ‘해탈’을 말할 수 있다.

<문학춘추> 1965년 2월호에 실린 김수영 시 ‘말’ 발표본. 맹문재 제공

이것은 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시 역시 죽음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 김수영은 시의 감동은 새로움에서 올 수 있는데, 이 새로움은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죽음으로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전 시의 내용과 형식이 죽음을 통해 새로워지고 자유로워질 때, 현대시의 모더니티도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수영이 죽음에 대해 가진 또 다른 사유는 죽음이 ‘나’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는 점이다. 그는 죽음이 나를 타자로, 공동체로 이끌어간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사유는 참여시의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김수영은 이제 현대시는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인류의 신념을, 관조가 아니라 실천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죽음의 실천”, “image의 순교” 등을 거론하였다.(산문 ‘새로움의 모색―쉬페르비엘과 비어렉’)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우주의 주인으로 여기고 나의 생명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일부 사상가와 비평가들은 현대에 절대적인 가치로 신뢰해온 자아의 의미를 부정하고자 죽음의 사유에 주목하였고 ‘작가의 죽음’을 내세웠다. 김수영이 현대시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면서 “죽음의 실천”을 내세운 것도 이러한 흐름선상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여기서 나아가 이미지의 죽음, 언어의 죽음을 내세우면서 죽음의 시학을 구체화하였다.

김수영이 번역해 1968년에 존 파울스 소설 <콜렉터>(정종화 옮김)와 함께 신구문화사의 ‘현대세계문학전집’ 제1권으로 출간된 뮤리얼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 작품 제목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판권란에는 1968년 3월에 출간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는 김 시인이 1968년 6월15일 바로 이 작품의 번역 원고를 신구문화사에 전달하느라 외출을 했고 한밤중 귀갓길에 사고를 당해 숨진 것으로 기억한다. 맹문재 제공

이러한 김수영의 생각은 ‘말’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 버렸다”라고 하면서 나의 생명은 죽음의 가치에 속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미지를 형성하는 시의 언어 역시 죽음의 언어라고 하였다. 그에게 시의 언어는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이다. 그러기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말’). 시의 주체가 죽음을 통해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의 언어 역시 죽음을 통해 ‘나’의 언어를 넘어선다. 시의 주체나 언어 모두 죽음을 통해 나의 한계를 벗어나 타자로, 공동체로 나아간다.

김수영은 죽음이 삶을 각성시키고, 생성을 이어나가게 하고, 나를 공동체로 이어가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은 시의 제재, 시의 주체, 언어의 문제에까지 관련된다. 이 점은 김수영만이 지니고 있는 죽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함으로써,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말할 수 있었고, 참여시를 내세울 수 있었다. 김수영은 죽음의 시학을 완성하고 실천함으로써 오래도록 살아 있는 시인이 되었다.

이미순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나무뿌리가 좀 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이 가슴의 동계(動悸)도 기침도 한기(寒氣)도 내 것이 아니다
이 집도 아내도 아들도 어머니도 다시 내 것이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할 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 버렸다
익살스러울 만치 모든 거리가 단축되고
익살스러울 만치 모든 질문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고해야 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무언의 말
이 때문에 아내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자식을 다루기 어려워지고 친구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이 너무나 큰 어려움에 나는 입을 봉하고 있는 셈이고
무서운 무성의를 자행하고 있다
이 무언의 말
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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