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조선팝! 판 뒤집혔다..귀 열어라, 흥 들어간다

임석규 2021. 11.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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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록 등과 크로스오버 표방
'풍류대장' '조선판스타' 잇따라
'설 곳 없는' 전통음악의 현실부터
코로나시대에 던지는 위로까지
국악 틀 벗어난 자유분방함으로
소리꾼 이희문과 재즈밴드 프렐류드가 지난 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감시대-창작콜라보 플러스’ 공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국악원 제공

최근 전통음악의 변신과 부상은 눈부실 정도다. 밴드 ‘씽씽’ ‘이날치’ ‘악단광칠’ ‘잠비나이’ 등이 선두에 섰다. 판소리가 록이나 재즈와 결합한 사례는 고릿적 얘기다. 이제는 민요와 정악에 더해 잡가, 군례악, 무속음악까지 힙합과 결합하고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어우러진다.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부한 채 전통의 틀을 깨고 ‘새롭고 다른 음악’을 하겠다는 젊은 국악인들의 투지가 충천해 있다. 국립국악원도 여기에 추임새를 넣고 있다. 3~11일 ‘공감시대―창작콜라보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여는 5차례 기획공연이 대표적 사례다. 국악의 기악과 성악, 연희 분야 8개 단체와 연주자들이 재즈, 전자음악, 디제잉, 미디어아트 등 다른 장르와 협업하는 무대를 선보인다.

이런 흐름은 마침내 서바이벌 형식의 국악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을 내건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JTBC)은 지난 9월 첫 방영 이후 6회째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최초의 퓨전 국악 오디션’을 내세운 <조선판스타>(MBN)는 지난달 30일 김산옥을 우승자로 배출하며 막을 내렸다. 각각 1억원의 상금을 내건 두 프로그램은 전통음악을 전공한 ‘국악 고수’들이 다른 장르 음악을 섞어 펼치는 크로스오버 경연 대회다. <풍류대장>은 3.3~3.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왼쪽부터 제이티비시(JTBC)의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에 출연한 최예림, 김준수, 서도밴드, 억스(AUX). JTBC 제공

국악계 안팎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전통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선 별 이견이 없다. ‘한국인의 음악이지만, 한국인과 가장 거리가 먼 음악이 국악’이라고 작가 장정일이 저서 <악서총람>에서 규정한 바 있지만, 최근 들어 국악이 어느 때보다 대중 가까이 다가온 게 사실이다. 송현민 <월간객석> 편집장은 “소리꾼을 보컬로 앞세운 팀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관객들이 모르던 소리, 새로운 소리를 들려줬다”며 “일종의 의무감에서 국악을 지켜봤던 관객들이 국악의 재미를 체감하고 있는 중”이라고 짚었다. “원래 국악은 세속의 음악이었고, 한때의 대중음악이었다. 잊히고 멀어졌던 그 음악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세속으로 나오고 있는 거다.”

<풍류대장>에 출연한 51개 팀의 면면을 보면, 전통음악의 최신 흐름과 쟁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출연자 대다수가 국악을 전공하거나 오래 연마한 전문 국악인이다. 국악 경연 대회에서 입상한 이들도 많다. 이들의 국악적 뿌리가 깊고 기반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을 역임한 김희선 국민대 교수는 “방송에 비치는 가요 부르는 모습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다. 이들이 대중음악을 한다고 해서 전통음악이 훼손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풍류대장>. JTBC 제공

출연팀 중엔 수많은 국외 공연으로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알려진 팀들이 많다. 첫 무대에 섰던 ‘프로젝트 위로(WERO)’는 400회 넘는 국외 공연을 했다. 2010년에 데뷔한 ‘고래야’도 수없는 국외 공연을 펼쳤다. 이런 팀들조차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면 방송에 출연하기 어려운 게 국내 현실이다. 미국 공영 라디오 <엔피아르>(NPR)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나서야 뒤늦게 국내에서 인정받은 씽씽의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이들은 국악계 내부의 오디션 경험도 풍부하다. 국악방송 주관, 국립국악원 후원으로 2007년 시작된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수상자들이 눈에 띈다. 최예림과 ‘서도밴드’ 멤버인 김성현, 박진병 등이 이 대회 입상자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대표적 창작 경연 대회로 유수한 국악인을 배출해왔다. 유망주 발굴을 위해 힘써온 전통음악계의 쌓인 노력도 국악이 쇠퇴하지 않고 생기를 발산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젊은 국악인이 ‘퓨전 국악’이란 용어를 썩 내켜 하지 않는다. 국악이란 고색창연한 이름이 뿜어내는 어딘지 촌스럽고 예스러운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풍류대장> 출연자들도 ‘국악’이란 타이틀 안에 갇히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서도밴드는 자신들이 ‘조선팝’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원조임을 강조한다. 5인조 혼성밴드 ‘누모리’는 아예 ‘새로운(nu) 장단(Mori)’이란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풍류대장>. JTBC 제공

<풍류대장> 출연진이 슬쩍슬쩍 보여준 ‘동시대성에 대한 예민한 촉수’는 변신을 도모하는 전통음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국악 하면 먹고살기 힘들고/ 춥고 배고픈 게 아티스트고/ 돈을 밝히면 속물이고”, “무대에 설 곳 없는 현실로 돌아오고/ 자존감 무너지고 삶은 막막하고~”. 최예림이 미국 힙합 가수 에미넴의 곡을 개사해 판소리 스타일로 부른 노래의 일부다. 한달 내내 국악 공연을 다녀도 8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는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이 곡은 대다수 국악인의 현주소를 전해준다. 공연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힘겨워 판소리를 3년간 포기하고 공사판 일을 하다 다시 도전하게 됐다는 신동재는 현실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영애의 ‘조율’을 빌려 코로나19확산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살포시 위로를 전한다. “우리 앞집 명자 이모는 월세를 못 내서 가게 문을 닫았구요/ 저 뒷집 덕호 아부지는 30년 다니던 회사에서 짤려 부렀대요/ …/ 사는 게 참 힘든디요/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우리에게 펼쳐질 봄날을 기다려봐요~”. 국악이 전통의 울타리에 갇히길 거부하고 현재의 장르들과의 협업을 통해 동시대인들의 상처와 아픔을 노래하는 데 이른 것이다. ‘국악이 오늘을 먹고 진화하는 오래된 음악’이어야 한다는 송현민 평론가의 방향 제시와 궤를 같이한다.

다만, 상업방송이 전통음악과 국악인을 소비하는 방식을 두고선 미심쩍어하는 시선도 일부 나온다. 트로트 오디션 열풍이 한풀 꺾이자 그 대체용품으로 국악에 눈을 돌린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대체 왜 소리꾼들이 전통음악의 발성으로 가요를 불러야 하느냐”며 “이렇게 해서라도 떠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간절함과 그 간절함을 이용해 아직 미개척지로 남은 국악 보컬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만들어내려는 방송국의 얕은수”라고 비판했다. 국악의 매력과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몇몇 국악인의 몸값만 올리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씽씽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국악 부흥의 선두에 섰던 이희문도 “대중가요를 민요 창법으로 부르라고 하는데 난 동의하지 못하겠더라”며 “<풍류대장>의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밴드 이날치와 엠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온스테이지 제공

그럼에도 국악의 변신과 파격을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희선 교수는 “국악은 박물관에 전시된 공예품이 아니다. 국악의 변신을 더 격려하고 북돋워야 한다”며 “전통음악의 보존과 계승은 대학 교육과 문화재 제도 등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이 지속성을 지니고 발전하려면 ‘확실한 시장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음악평론가인 이소영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장은 “다양한 취향의 대중이 여러 플랫폼을 통해 다채로운 색깔의 국악을 수월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두 팀의 반짝 인기로는 부족하다”며 “국악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단단하게 뿌리를 뻗어갈 때까지 다양하고 파격적인 실험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프로젝트 그룹 ‘오방신(神)과’를 결성한 이희문(가운데). 이희문컴퍼니 제공
“나는 샘플만 만들어…흐름 바꿀 스타 나와야”
소리꾼 이희문 인터뷰

독창성을 무기로 국악의 파격과 실험을 주도해온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은 의사 표현이 분명했다.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JTBC) 심사위원 요청을 사양한 데 대해선 “내가 평가를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못 하겠더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하는 ‘공감시대―창작콜라보 플러스’ 공연을 앞두고 있던 그를 전화로 만났다.
―<풍류대장> 심사위원 제안을 왜 받아들이지 않았나?
“그 프로그램이 시도하는 게 ‘대중가요를 민요의 창법으로 불러달라’ 이런 식인데 그거는 내가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통 소리의 발성을 배운 사람이다. ‘씽씽’이 국외에서 주목받은 이유도 전통 소리의 발성이었다. 다른 건 전부 서양의 것인데 목소리, 보컬 하나만 우리 것이었다. 가요는 서양의 화성법에 맞춰 만들어진다. 그런데 민요는 화성이 아니라 단선율이다. 화성으로 만들어진 가요를 단선율의 민요로 부르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난 그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민요의 발성법으로 가요를 부르면 전통을 훼손하는 건가?
“나는 그런 걸 안 하려고 씽씽, 한국남자, 오방신(神)과를 만들어 실험들을 한 거다. 씽씽이 해외에서 주목받은 것도 민요 창법 덕분이었다. 나 스스로 그런 노력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 유일한 무기가 민요의 창법과 발성법이다. 그걸 가지고 다른 집에 가서 다른 사람을 흉내 내라고 하는데 그거는 자신이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전통음악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분들은 하고 못 하는 사람은 안 하면 되는 거다. 한다고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다양성이 존재하는 게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좋다고 본다.”
―최근 방송에 나가 가요를 부르지 않았나?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에 나가 싸이의 ‘나팔바지’란 곡을 나름대로 해석해 불러봤다. 해봤더니 역시나 힘든 작업이었다. 잘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괜히 했구나. 역시 내 옷이 아니구나!’ 이런 결론을 내렸다. 자기만족 아닌가. 내 기호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경험을 해보니까 알게 됐다.”
―최근의 흐름이 국악의 도약으로 이어지려면 뭐가 중요한가?
“전통음악 하는 분 중에도 큰 스타가 나와야 한다. 국악의 힘이 커져 판이 바뀌어야 한다. 살짝 유행이 오긴 왔지만 국악의 시장이 커지지 않으면 결국 양은 냄비처럼 끓다가 식어버릴 거다.”
―본인이 스타 아닌가?
“나는 그냥 샘플만 만들었다. 국악 하는 젊은 친구들 가운데 판을 주도해서 흐름을 바꿔놓는 스타가 나와야 한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런 판을 깔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서 스타가 나오면 좋겠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하하하.”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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