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자격을 묻고 싶었죠"

윤희일 선임기자 2021. 11. 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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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뎅 꼬치 들고 사진 찍지 마라…소품 아닌 따뜻한 위안이다’
‘대통령은 굽은 길에 서라’ 풍자시로 돌아온 시인 정덕재

선거 때 반복되는 장면들 지겨워
권력 쟁탈에만 힘 쏟는 정치인들
더불어 사는 사회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 달라는 뜻으로 썼다

‘선거운동 기간에 오뎅 꼬치를 들고 사진을 찍지 말아라. 오뎅은 촬영용 소품이 아니다. (오뎅은) 당신의 소품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준 따뜻한 위안이다.’

정덕재 시인(55·사진)은 최근 펴낸 시집 <대통령은 굽은 길에 서라>(스토리밥출판)에 실린 시 ‘오뎅을 존중하라’를 통해 이렇게 외친다. 이 시의 부제는 ‘시장 안에서의 선거운동 금지’다.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어묵(오뎅) 먹는 후보들’, 지겹잖아요. 시장 안에서의 선거운동 금지법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시집은 일단 재밌다. 시어가 배배 꼬여있지만, 팔딱팔딱 살아 움직인다. 그 살아있는 말이 비수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꽂힌다. 때로는 정치인의 가슴에, 때로는 경제인의 가슴에, 때로는 법조인의 가슴에, 팍팍.

‘국회의원 노릇하기’라는 시에서는 ‘국회의사당 안에서 휴대폰 카톡 문자로 저녁에 고기를 먹을 것인지, 회를 먹을 것인지를 정하고 있는 한 국회의원’의 사례를 내세운 뒤 ‘국회의사당 내 휴대폰 사용 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 후보 자격 완화’라는 부제가 붙은 다른 시에서는 대통령 후보를 아예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뽑자고 제안한다.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찾아가는 현충원 참배를 보면서 썼다는 ‘현충원 비망록을 쓸 수 있는 자격’에서 그는 “(정치인들의) 현충원 참배를 제한하자”고 비꼰다.

“정치의 계절이잖아요. ‘지방주재 시인’을 자처하는 저의 문학적 상상을 통해 대통령과 정치인의 자격을 따져봤어요. 권력 쟁탈에 온 힘을 쏟는 오늘날의 정치현실 속에서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번도 모르는 밭뙈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일년 내내 아파트 거실에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퇴비를 쌓아둔다면 도시에 살더라도 ‘농지를 보유할 수 있는 자격’을 재검토해 보자면서 땅 투기꾼들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풍자로 가득 찬 시 속에 낭만이 철철 흐르는 시도 더러 섞여 있다. ‘첫사랑을 만나는 사적 공휴일’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정 시인은 “첫사랑과 헤어진 날은 자발적으로 쉬는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첫사랑과의 만남 지원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시에서 그는 “과테말라에서 생산된 커피 원두가 배를 타고 한국까지 오면서 겪었을 온갖 고통을 생각하면서 사물에 대해서도 존댓말을 사용하자”는 돌발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는 “시집 제목에 있는 ‘굽은 길에 서라’는 말에는 우리 정치인들이 성장이나 발전, 속도에만 매달리지 말고 때로는 멈춰 보고, 때로는 되돌아보면서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를 생각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시인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동안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현재 대전에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정 시인은 시집 끝에 실린 산문에 김밥집 주인과 손님의 이런 대화를 담았다. 역시 현재 치러지고 있는 대통령 선거를 직격한다. 이 시는 주요 정당의 후보가 정해지기 전에 쓴 것이다.

“김밥 재료처럼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함량 미달 후보는 빼고 우량 후보는 더 넣고 그러면 좋겠네요. 물론 결정은 김밥집 주인이 하고.”

“그럼 지금 같아서는 김밥 안에 넣을 후보가 없으니 충무김밥이 되겠네요.”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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