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집회의 자유..기대와 불안 속 북적인 도심
[경향신문]
일상회복 첫 주말에 서울에서만 20여개 단체·1800여명 모여
공론장 정상화 기대감 드러낸 시민들, 코로나 재확산 우려도
“이렇게 평화롭게 집회해서 좋은 세상으로 조금씩 바뀌어갔으면 좋겠어요.”
7일 오랜만에 가을 바람을 쐬러 나온 장명숙씨(68)는 지난달 전남 여수 요트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사망한 홍정운군을 추모하는 시위 행렬을 우연히 마주쳤다. 장씨는 홍군의 친구들이 든 영정 사진을 보고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조용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후 첫 주말을 맞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공론장이 정상화하는 신호라며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특성화고 3학년 재학 중 사망한 홍군을 추모하고 ‘학교에서부터 노동교육을 실시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일환으로 홍군은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지난달 7t급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등을 떼어내는 잠수작업을 하다 물에 빠져 숨졌다. 해경 조사 결과 요트업체 사장이 부당한 잠수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민주노총 집회 외에도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주최한 사업장 이동 자유 및 노동권 보장 촉구 거리행진, 대한자영업자 연합회가 주최한 백신패스 반대 집회 등이 각각 90여명 규모로 열렸다. 지난 6일에는 기후위기 비상행동 회원 350여명이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과감한 탄소감축 정책을 요구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탄핵 무효와 석방을 주장하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 약 1200명이 중구 태평로 인근에서, 국민혁명당도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각종 집회에는 20여개 단체 약 18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에 따르면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집회 신고 건수가 크게 늘었다. 1인 시위로 제한된 집회 인원이 100명 미만(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자일 경우 500명 미만)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년9개월간 대규모 집회가 금지됐던 서울에서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자마자 5일 만에 집회신고 1466건이 접수됐다. 지난 10월 한 달간 집회 신고 건수가 1354건을 넘어섰다.
오랜만에 열린 대규모 집회에 시민들도 관심을 보였다. 주말을 맞아 경복궁, 서촌 등으로 나들이를 나온 관광객들은 가두행진 쪽으로 연신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큰 음악소리에 귀를 틀어막기도 했다. 행진이 지나가는 동안 선 채로 발언을 경청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재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시청 근처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이모씨(54)는 “요즘 검사받으러 오는 분도 늘었고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는 노마스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보여서 걱정”이라며 “코로나19가 금방 끝나는 게 아닌데 방심하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집회의 경우 밀접 접촉자도 많이 생길 텐데 상황이 좋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3일 서울 도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주최 측은 집회에 1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현행 500명 미만으로 제한된 집회 허용 인원 때문에 개최 방식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집회 강행 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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