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원금도 갚아나가라니.. "전셋집서 저축해 집 사던 시대는 끝"

이미지 기자 2021. 11. 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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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분할상환' 확대.. 집값 잡으려다 서민 잡을판
그래픽=이철원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반전세’로 사는 김모(52)씨는 최근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에 분할상환 우대를 확대한다는 뉴스에 걱정이 쌓이고 있다. 무주택 가장인 김씨는 대출금 2억원에 대한 이자로만 매달 58만원을 내고 있는데, 분할상환이 되면 원금까지 같이 갚아야 해 생활비가 더 빠듯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 초 ‘전세금 안 올려주면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 때문에 반전세로 바꿔 매달 월세만 100만원을 내는 처지다. 김씨는 “대출 원금까지 같이 갚게 되면 저축은커녕 고등학생인 두 아이 학원비 낼 돈도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주축이 된 ‘가계부채 관리 태스크포스’는 지난 1일 첫 회의에서 “해외 주요국은 분할상환 대출이 관행”이라며 “국내 가계대출 관행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이미 전세대출 분할상환 실적이 우수한 금융사에 정책 모기지 배정을 우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는 전세대출을 분할상환하는 대출자에게 한도를 늘려주거나 금리를 내려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검토하지만, 금융권은 사실상 분할상환을 전면 확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일부 시중은행은 신규 대출자에게 분할상환 방안을 안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 수요자 입장에선 이자에다 원금까지 갚아야 하기 때문에 만만찮은 지출이 추가되는 것이다.

◇전세대출, 원금까지 같이 갚게 되나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가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포함한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자 무주택 서민들의 한숨이 더 커지고 있다. 전셋값 상승을 감당 못 해 월셋집으로 내몰리는 처지에서 매달 부담해야 하는 금융 비용까지 더 늘면 가처분소득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통상 2년 만기인 전세대출은 다달이 이자만 내다가 만기 때 원금을 한번에 갚으면 된다. 하지만 분할 상환을 하게 되면, 원금 일부를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한다. 다른 대출 상품의 경우 금융 당국은 통상 원금의 5% 이상만 나눠 갚으면 분할상환으로 인정해왔다. 전세대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전망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주거 관련 지출만 급격히 늘어나면서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연 금리 3.5%로 전세대출 2억원을 받아 매달 58만3000원의 이자만 내던 김씨의 경우 원금의 5%(1000만원)를 분할상환하면 매달 은행에 갚는 금액이 99만9600원으로 71%나 증가한다.

새로 전셋집을 알아보던 무주택자들도 분할상환 도입 가능성에 자금 계획을 다시 세우는 등 비상이 걸렸다. 서울 송파구 전셋집을 알아보던 회사원 정모(35)씨는 “3억원 정도 대출을 내서 20평대 전세 아파트를 구하는 중인데 분할상환이 되면 매달 원리금만 150만원 넘게 갚아야 한다”며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더 저렴한 집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월세 가속화에 가처분소득 급감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중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전세대출에 원리금 분할상환을 강제하면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더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입자 입장에선 목돈을 빌려 전셋집을 구해도 원금까지 함께 갚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수입의 대다수를 주거비로 지출하는 세입자가 늘어나면 전셋집 살면서 부지런히 저축해 집을 사는 ‘내 집 마련 공식’이 통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작년 임대차법 개정 후 전셋값이 치솟자 전세가 아닌 월세로 계약하는 세입자가 크게 늘었다. 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서울 아파트 전체 임대차 계약(14만6598건) 중 36.4%가 월세를 낀 계약이었다. 2018~2020년 28~29%였던 월세 비중이 30% 중반대로 급증했다. ‘5% 상한’에 막혀 전세금을 시세대로 받지 못하게 된 집주인이 월세를 받아 소득을 보전하려고 하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월세 낀 계약을 하는 세입자도 늘어났다는 뜻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법 개정이나 가계대출 관리나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돕겠다는 정부 정책이 중소득층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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