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간병 살인이 드러낸 '영 케어러'의 고통, 국가는 어디 있었나
[경향신문]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며 여론이 들끓고 있다.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공적인 지원은 닿지 않았다. 1심에서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강도영씨(가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10일)를 앞두고 살해가 아닌 유기치사로 판단해 달라는 탄원이 이어지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이 공론화한 것을 계기로, 가족돌봄과 간병을 도맡은 25세 미만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위한 지원책 마련을 촉구한다.
인터넷 언론 ‘셜록’의 탐사보도로 알려진 죽음의 이면을 파헤치다보면 간병 살인으로 이어진 절망적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강씨의 아버지는 대구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져 온몸이 거의 마비됐다. 2000만원에 이르는 병원비는 강씨의 삼촌이 부담했지만, 이후 생계가 막막해진 강씨는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생활비를 벌고, 24시간 간병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빚 독촉과 생활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전기와 가스, 식량이 차례로 끊겼다. 비극을 직감한 아버지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 테니 방에 들어오지 말라’ 했고, 자포자기한 강씨는 아버지가 숨진 이후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됐다.
강씨와 같은 ‘영 케어러’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교육과 시간 투자 기회를 통째로 빼앗겨 진로 선택에도 제약을 받게 된다. 이들의 희생은 개인적 부담인 동시에 결국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더욱 심각해질 영 케어러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런 영 케어러를 3만명가량으로 추정할 뿐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이뤄진 바 없다. 영 케어러의 정의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상담이나 보조금 지원 등 지원책을 두고 있는 영국·호주·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입법 등을 서둘러야 한다. 대선 후보와 각 정당은 “안타깝다”는 수사로만 그쳐선 안 된다.
차제에 가족 단위에 맡겨진 간병과 돌봄을 더 큰 틀에서 해결하려는 국가적 노력도 필요하다. 자녀 수가 줄어들고 1인 가구가 급증하는 만큼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효자·효녀라는 칭찬과 표창 대신,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다져 쓰러지는 개인을 붙들어야 한다. 국가의 마땅한 임무이자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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