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의 세계+] 진정한 진보를 꿈꾸며

한겨레 2021. 11. 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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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생애를 살아가던 한 사람에서 한순간 바이러스의 숙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2020년은 시작됐고, 이제는 2021년도 11월 초에 접어들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향한 열망이 뿜어져 나온 1987년의 광장과 비주체적인 미국 소고기 수입 정책, 용산 참사,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발로 마련된 이명박 정권 시절의 광장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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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세계+]

조해진ㅣ소설가

고유한 생애를 살아가던 한 사람에서 한순간 바이러스의 숙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2020년은 시작됐고, 이제는 2021년도 11월 초에 접어들었다. 이즈음 우리 국민의 모든 이목을 끄는 가장 큰 이슈는 그야 물론 내년 대선일 것이다. 각 정당의 대선 주자가 속속 정해졌으니 내년 3월 대선 때까지 치열한 표 싸움이 전개될 터이다.

그런데 왜 나뿐 아니라 내 지인들은 이번 선거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어째서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최선의 후보가 있다는 사람은 드문 반면, 저마다 새 대통령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후보만 이야기하는 것일까.

최근에 2010년대를 조망한 윤여일의 <물음을 위한 물음>(갈무리)을 읽으며 나는 그 해답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거는 지금을 위한 물음’이라고 쓰면서 2010년대의 가장 큰 사건이었던 촛불집회(2016년)가 과거의 광장이 품었던 물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대통령 직선제를 향한 열망이 뿜어져 나온 1987년의 광장과 비주체적인 미국 소고기 수입 정책, 용산 참사,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발로 마련된 이명박 정권 시절의 광장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22년의 대선 역시 과거의 ‘광장들’에서 우리가 가졌던 물음에 대한 응답이자 예우가 되어야 할 텐데, 지금의 대통령 후보들이나 선거캠프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술수와 사기로 얼룩진 가족의 맨 얼굴이랄지, 기본적인 역사의식도 없는 듯한 가벼운 언행이 드러나기도 하고, 개발 비리에 연루된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윤석열 후보가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쓴 채 경선 토론회에 나왔다는 이야기에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승패만이 중요한 유치한 게임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

윤여일의 같은 책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한 사회의 진보 정도는 ‘사회적 타살’을 얼마나 최소화하는지, 그리고 성숙 정도는 사회적 타살이 발생했을 때 사회구성원이 그 희생에 대해 어떻게 세분화해서 감당하는지에 따라 측정될 수 있다는 문장…. 나는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죽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분명 반복될 것이다) 보상과 사후 대책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사회 구성원들이 그 사건에 함께 아파하는 공동체를 간절히 꿈꾼다. 나는 또한 아이들과 여성들이 더 이상 폭력에 노출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해야겠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장애와 성정체성 때문에, 여자이거나 남자이기 때문에, 노인이어서, 아니면 어리니까, 이런 단서들이 혐오의 이유가 되어 함부로 세상을 이분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되기를 바란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너도나도 부자가 되는 나라가 아니라, 희생을 최대한 줄여나가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나라가 진짜 진보를 이룬 나라이자 과거의 저항과 물음들에 책임을 지는 나라라고 믿는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김초엽의 단편소설 ‘숨그림자’(<방금 떠나온 세계>, 한겨레출판)에는 ‘장애는 결함이 아니라 변화’라고, 때로는 ‘진보’일 수 있다고 말하는 ‘마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리는 해양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화학물질로 시지각 회로에 결함을 안고 태어난 ‘모그’ 중 한명이다. 장애가 타인과 다른 것을 더 느끼고 알아가는 변별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성숙한 나라를, 그리고 그 성숙한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나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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