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중심 세계교역 30% '메가FTA' 열린다.. 美 주춤한 새 먼저 '깃발'[글로벌리포트]
中, 글로벌 통상·무역 새 역학구도 짜
15개국 참여 거대 경제블록 형성
美 공백 틈타 CPTPP 가입도 추진
호주·캐나다 등 기존가입국 동의 얻어야
'중국=다자주의 수호자' 이미지 부각
실제 가입보단 '美 견제' 정치적 의도
디지털경제 위해 'DEPA'도 노려
美, 아태 국가와 손잡고 中 포위하자 우호국 싱가포르 등에 손내밀어 가입 신청
그러나 국제 경제·무역 역학구도가 새롭게 짜이게 됐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세계 경제 주도권 경쟁에서 미국이 주춤한 틈을 타 중국이 승기를 먼저 가져가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 매체와 정부가 얘기하는 '승리'는 사실상 미국과 경쟁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외연 확장은 RCEP에 그치지 않는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반중국을 외치며 동맹국 결집을 호소하는 동안 중국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거대 경제권 형성으로 보호막을 치는 형국이 된 셈이다. 다만 미국이 손을 놓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미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쳤다.
그래도 중국의 약진은 핵심 관찰대상이다. 세계가 중국식 통상·무역 모델을 적용하고 중국식 질서에 적응해야 할 미래가 불가능이 아닌 시점까지 전개됐다.
■미국보다 먼저 깃발 꽂은 거대 경제블록
RCEP 발효 시점이 확정된 것이 중국에 주는 의미는 △무역규모 5조4000억달러 △명목GDP 26조3000억달러 △인구 22억7000만명 등으로 나열되는 경제적 숫자 잔치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과 경쟁 구도에서 자국을 배제하려는 상대국을 제치고 오히려 먼저 중국 중심의 거대 경제블록을 형성했다는 역학적 관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고 봐야 한다.
RCEP의 태동은 사실상 미국이 촉발시켰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재임 시절인 2009년부터 중국을 배제한 채 일본, 호주, 캐나다 등 핵심 12개 우방국을 주축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RCEP는 그로부터 2년 뒤에야 시작됐다. 2011년 아세안이 제안했지만 중국이 미국의 TPP를 견제하기 위해 교섭에 참여하면서 중국 주도 협정으로 점차 부각됐다. GDP 규모에서 볼 때 TPP는 미국 비중이 60%였고, RCEP는 중국이 55%를 차지해 사실상 양국이 이끌어가는 형태였다.
하지만 TPP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을 물려받으면서 그 규모가 축소된 채 CPTPP로 이름을 바꿔 발효된 것과 달리, RCEP는 미 보호무역 주의와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빠르게 진행돼 2020년 11월 최종 서명(인도 탈퇴)을 거쳐 내년 1월 발효까지 앞두게 됐다.
CPTPP와 RCEP는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중국이 서로 상대방을 의식해 추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중 양국이 손에 쥔 결과물은 명확히 차이가 난다. RCEP는 전체 참여국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중심으로 움직이게 됐지만 미국은 이제야 CPTPP에 다시 가입 신청서를 만지작거리는 상태가 됐다. 사실상 거대 경제블록 형성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먼저 깃발을 움켜쥔 셈이다. 중국이 RCEP 15개국 중 올해 3월 최초로 비준 절차를 끝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중문망은 전문가를 인용, "중국을 배제한 정치적 목적이 분명했던 TPP는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비장의 무기'였다"면서 "미국은 인도와 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CPTPP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입 추진 자체가 '정치적' CPTPP
중국은 이와 별도로 미국의 공백을 틈 타 CPTPP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RCEP보다는 현재까진 규모가 작지만 11개국이 참여하면서 역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린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14일 중국 최대 무역박람회인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캔톤페어) 개막실 연설에서 "개혁개방은 중국의 기본 정책"이라며 "CPTPP 가입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9월 가입 신청서를 냈다.
다만 중국의 CPTTP 참여국 희망이 결실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CPTPP에 들어가려면 기존 가입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하지만 모두 중국을 환영할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은 호주와는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호주가 미국 편에서 코로나19 발원지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지목하고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거론하자, 중국은 무역으로 보복했다. 현재 중국의 전력난 원인 중 하나도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에서 파생됐다. 캐나다와 멕시코도 중국 가입을 거부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들 국가는 1994년 미국과 체결한 북미 3개국 FTA가 걸림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TPP 때처럼 '미국 일자리'를 언급하며 24년 만인 2018년 재협상해 신북미자유협정(USMCA)으로 바꿨다. 이 협정은 3개국 중 어느 국가라도 '비시장경제국'(중국)과 FTA를 체결하면 다른 국가들이 종료할 수 있다는 단서를 새로 넣었다. 결국 중국의 CPTPP 가입을 차단하기 위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포석이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미국 경제 의존도는 각각 76%와 83%다.
CPTPP를 주도하는 일본 역시 중국 입장에선 부담스런 존재다. 일본의 '친미'는 공식적이며 중국과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등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4일 첫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CPTPP의 높은 수준을 제대로 만족하는지 제대로 봐야 한다"고 했고,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중국 가입을 지지한 칠레에 대해 "타인의 일보다 자신의 국내 절차를 확실히 진행해달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본은 오히려 대만의 CPTPP 가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CPTPP도 RCEP처럼 중국의 '정치적 고려'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차피 CPTPP가 회원국 반대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개방(데이터 거래 활성화, 금융·외국인투자 규제 완화, 국유기업 보조금 철폐 등)조차도 감내하기 힘든 만큼, '중국=다자주의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미국을 견제할 의도가 숨어 있다는 논리다. 중국 경제소식통은 "중국 정부나 관영 매체, 전문가들도 CPTPP 가입이 어렵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면서 "자국의 국제적 이미지 향상을 위해 CPTPP를 계속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경제 주도권 'DEPA'
중국이 DEPA에 가입하려는 것도 속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디지털 무역협정을 맺으며 중국을 포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관련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DEPA는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칠레 3개국이 디지털 통상 규범을 정립하고 협력 강화를 위해 올해 1월 발표시킨 디지털 무역협정이다. 원활한 전자상거래, 개인정보 보호 등에 관한 디지털 규범과 인공지능(AI), 핀테크 등 신기술 분야 협력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입도 CPTPP보다 수월할 것으로 관측된다. 싱가포르는 중국 우호국이며 칠레는 CPTPP에서 중국 가입을 지원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중국과 함께 RCEP 회원국이다.
다만 데이터 거래 활성화 등 이른바 '만리방화벽'으로 불리는 중국식 강력한 통제 정책을 벗어난 협정문에 대해선 중국이 가입 논의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분석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 이탈리아 로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연설에서 "중국이 DEPA 가입을 신청하기로 했다"면서 "디지털 경제의 건강하고 질서 있는 발전을 위해 각국과 힘을 합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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