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불꽃 '앨리스'를 찾아서

이한나 2021. 11. 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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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최욱경 회고전
내년 2월까지 현대미술관 과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영향
자작시와 작품세계 연관 기획
세계 106대 女추상화가로 뽑혀
올 퐁피두·구겐하임서도 전시
1984년작 `Mountains Floating Like Islands(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한때에/나의 이름은/낯설은 얼굴들 중에서/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였습니다. (중략) 결국은/생활이란 굴레에서/아주 조그마한 채/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

추상화가 최욱경(1940~1985) 시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년)이다. 그의 대규모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가 자작시와 작품을 함께 풀어가는 방식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내년 2월 13일까지 열린다.

전시 제목은 그의 자작시 '앨리스의 고양이'에서 따왔으며 동시대 현대미술과 문학 간 관계를 통해 다각도로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45세에 요절한 비극적 여성 작가의 틀에 갇혔던 그를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년)처럼 낯선 시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갔던 미술가이자 시인, 교육자로서 능동적 주체로 재해석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과 친숙했던 그는 '어머니는 자수로 호흡한다' 등 서술적 제목으로 차별화했고 1972년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1963~1970)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1971~1978)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1979~1985) 등 주제 공간을 연대기별로 보여주고, 마지막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 작가의 작업 공간과 자화상을 조명하며 마무리한다.

첫 번째 방은 미국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정체성을 탐색하면서 추상표현주의 등 미국 동시대 미술을 폭넓게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번째 방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독자적인 추상미술을 제작한 시기를 펼친다. 원색의 강렬한 대비와 표현적 기법이 두드러졌다. 세 번째 방에는 1979년 귀국 후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한국 산과 섬의 조형성을 탐구한 작품들이 걸려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최욱경은 선이 굵은 회화 작품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며 "미공개 작품 10여 점 등도 첫선을 보여 최욱경 미술의 원형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 여동생 최주경 씨는 "아버님이 특히 욱경 언니를 예뻐하셔서 출장 때마다 물감을 잔뜩 사다 주셨다"며 "참신한 전시 기획으로 언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기쁘다"고 전했다.

유족들의 정성 어린 관리 덕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도 선보였다. 전시 개막일 전시장을 찾은 유족들은 새롭게 발굴한 작품들의 전시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욱경이 세상을 떠난 후 2년이 지난 1987년 대규모 전시가 열렸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최근 전 세계 여성화가 106명을 선정한 '여성 추상화가전(Women in Abstraction)'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작품을 걸었다. 올해 상반기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 이어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조각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 눈길을 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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