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저널리즘] 우리 동네에 저널리즘이 산다
[미디어오늘 노광준 전 경기방송 PD]
사람들은 저널리즘을 남의 일로 여긴다. 뉴스하면 '엄근진'(엄숙, 근엄, 진지) 앵커나 기자 모습을 떠올리듯 저널리즘도 여의도의 거대 방송 스튜디오 안에만 있는 거창한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겪어보니 저널리즘은 내 일터나 내가 사는 동네의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우리의 일이었다.
며칠 전 장을 본 로컬푸드 매장에도 저널리즘이 살고 있었다.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25만 원 전액을 농산물 구입에 썼는데, 햅쌀부터 현미, 귀리쌀, 잡곡, 된장, 간장에 청국장까지 카트 가득 푸짐했다. 저렴한 데다 품질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몇 줄 적어 SNS에 올렸다. 수십개의 좋아요가 달렸고 '거기가 어디냐'는 댓글도 달렸다. 거기가 어디라고 답글을 단 순간 나의 글은 누군가에게 '정보'가 된다. '왜 저런 곳이 우리 동네에는 없느냐'는 의문 댓글이 달린 순간 '저널리즘'이 되고 '어떻게' 로컬푸드 매장을 우리 지역에 운영할지 고민하는 순간 '행정'이 되고 '정치'가 되어 세상을 바꾼다.
아파트 앞 수영장에도 저널리즘이 산다. 시에서 건립한 공공체육시설인데 출범과 동시에 코로나19를 만나 개점휴업이었다. '위드코로나'에 접어든 지금 어떻게 운영될지 궁금해 산책길에 들러봤더니, 인원수를 제한하긴 하지만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배드민턴과 탁구, 당구장도 있었고 풋살과 족구장은 무료 입장이다. 이런 조각 정보도 누군가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지 않을까.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고 저널리즘이 없는 게 아니다. 저널리스트가 없을 뿐 그 저널리스트가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내가 된다면, 그게 바로 '마을 미디어'이고 '공동체 라디오'다.
아이들 학교 앞에도 저널리즘이 산다. 지난달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적용돼 어린이 보호구역 내 모든 도로에서 주정차가 금지됐다. 승용차는 최대 13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스쿨 존 안에 있던 기존 주차 공간들도 머지않아 폐쇄될 텐데 그럼 어디에 주차하지? 대안은? 동네마다 해법이 다를 테고 그곳에 저널리즘이 산다. 편의점 앞에도 저널리즘이 있다. 담배들을 하도 많이 피워대서 주민들이 아우성인데 좀체 고쳐질 줄 모른다.
이처럼 동네 곳곳에 저널리즘이 산다. 담아낼 미디어들도 제법 있다. 곳곳에 마을미디어들이 생겨나고 올 7월에는 무려 20곳이나 되는 공동체라디오가 신규 허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지역뉴스 사막화' 현상을 걱정하고 있을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 동네에 사는 옥구슬들을 제대로 꿰어보자. 집밥 레시피에 관심 많은 주부는 음식 전문 통신원이고 택시를 모는 앞집 아저씨는 재난·교통 통신원이다. 늘 옆집 아이 소식이 궁금한 형수님은 교육 입시 담당, 난개발이 안타까운 새댁은 환경 전문, 인스타를 잘하는 대학생은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전문이다. 10명만 모이면 준비위원회가 되고 100명이 모이면 언론이 되며 1000명이 모이면 유력 매체가 된다. 어떤 식으로?
'동네사건사고/우리동네질문/동네맛집/해주세요/동네소식/취미/동물/건강/교육…'
'당근'이 동네 생활을 분류하는 유목들이다. 완성된 기사를 써야 하는 부담스러운 시민기자 말고, 정치부 사회부 등 관공서 출입처에 맞춰 구성된 기존 언론의 유목 말고, 지역민 피부에 와 닿는 생활자치형 유목을 구성해 통신원이든 정보원이든 관심기사 퍼나르는 수집원이든 각자 자유로운 방식으로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해보자.
워싱턴의 호텔 경비원은 어느날 주차장으로 통하는 문에 매달린 수상한 끈을 발견했다. 외부 침입일지 모른다고 의심한 그는 즉시 경찰서에 신고했다. 이게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이었다. 조각 정보, 모든 저널리즘은 늘 이렇게 작은 정보 조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작은 정보가 모여 퍼즐의 그림이 완성될 때 세상이 바뀐다. 우리 지역을 바꾸는 시민통신원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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