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협치 예산 '전방위 싸움' 나선 서울시..지지층 존재감 제고용?

김양진 2021. 11. 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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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보조금 예산 반토막에 시의회·자치구·시민단체 반발
"자가당착" 서울시 '강공'에 갈등 격화..정치적 꽃놀이패 해석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 오후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 1차 본회의에서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서울시가 시의회·자치구·시민단체 등과 전방위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민관협치 관련 예산 삭감 문제를 지적한 시의회를 상대로 “자가당착” “억지” 등 거친 말을 동원해 강공을 퍼부어, 진행 중이던 행정사무감사가 중단되는 등 시와 시의회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구청장협의회의 ‘민관협치 예산 삭감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억지”라며 일축했다.

이례적인 여러 충돌과 분란을 개의치 않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마이웨이’ 행보의 배경과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시 대변인, 시의회에 “자가당착”

서울시 대변인실에 대한 시의회 행정사무감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4일 오후 2시께 대변인실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시의회의 이중잣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30쪽에 이르는 이 보도자료는 지난 6년간 민간위탁·보조금과 관련해 서울시의원들이 내놓은 비판적 발언들을 발췌해 싣고 “(협치 예산 삭감은) 시의회의 지적에 따라 혈세낭비적인 요소를 제거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일 시가 시의회에 보낸 내년도 예산안에서 주민자치·노동·주거복지 분야 등 민간위탁·보조금 예산 요구액(1788억원)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832억원(47%)이 삭감된 것을 두고 시민사회 등에서 비판여론이 일었는데, 해당 문제제기는 앞서 시의회가 지속해서 내놓은 지적이었다는 반박성 주장이었다. 보도자료에서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은 “지난 6년간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이 민간위탁‧민간보조금 사업에 대해 지적한 사항이 수십 건에 이른다. 대부분 오세훈 시장 취임 이전에 이뤄진 비판이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논리는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불과하다”고 시의회를 비판했 다.

대변인의 ‘도발’에 행정사무감사는 중단됐고, 오후 6시께 시의회 민주당은 ‘시의회 자가당착 주장하는 오세훈 시장, 해경 폐지한 박근혜식 사고’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어 “(민간위탁·보조금사업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개선해 주민참여·민관협치의 올바른 정책 방향을 모색하라는 것이 (발언의) 목적이었는데, 시의회의 견제를 왜곡·호도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나무를 제대로 키우라고 했더니, 갑자기 뿌리째 뽑겠다고 한다”며 “‘서울런’ 폐지 등 시의회의 다른 주장에는 ‘시의회 말이 틀렸다’고 나오면서, 오세훈 시장 마음대로 의원들이 듣고 싶은 말만 뽑아다가 시의회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저급한 정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튿날인 5일에도 대변인 명의로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논평에 대한 서울시 입장’ 자료를 내어 “서울시의회는 왜 갑자기 그 입장이 바뀌어 문제점들이 제기된, 특혜성 민간위탁금·보조금을 받는 단체의 편에 서서 대변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국정감사서 청 대변인이 야당 비난했다면…”

서울시 쪽의 연이은 ‘강공’에 시의회 민주당은 5일 오후 4시부터 의원총회를 열어 오 시장의 사과와 이 대변인 경질을 요구했다. 다만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안 심사 등 의정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주말인 6일 오전에는 “시의회 민주당은 올바른 서울시정과 주민자치를 위한 서울시의회의 그간 노력을 ‘말 바꾸기 이중잣대’로 왜곡하고, 내 허물과 욕심을 감추기 위해, 얕은꾀와 말장난으로 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사를 방해하며, 나아가 천만 시민을 우롱하는 오세훈 시장의 저급한 정치놀음에 ‘어른스러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대처함으로써 시민을 위한 정치를 실천하고자 한다”는 성명을 냈다. 내부적으로는 “‘오세훈 서울시’가 시의회·자치구 등을 시정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있다”며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지만, 일단은 차분히 대응해 나가기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서울시와 시의회의 이런 충돌을 두고 서울시 한 과장급 간부는 “오 시장이 모든 시민단체가 문제라거나 비난하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용어 때문에 외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간부는 “국회가 국정감사를 하는데, 청와대 대변인이 국민의힘 보고 ‘자가당착’이라고 비난했다면 어떻게 됐겠나. 10년 전 무상급식 때랑 비슷한 양상이다. 오 시장은 시의회를 시정의 파트너로 보지 않은 것 같다”며 “공무원 출신이 대변인을 하면 시장을 말리기도 하고 수위를 낮추기도 하는데, 정무직 대변인이 오더니 갈등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과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지난해 총선 때 경기 하남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어 4·7재보선 오 시장 캠프 공보단장을 거쳐 지난 6월 서울시 대변인에 임명됐다.

지난해 3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경기도 하남시 국회의원 후보 시절 이창근 현 서울시 대변인. <오마이뉴스> 누리집 갈무리

구청장들 “민주주의 후퇴”…서울시 “억지”

‘오세훈 서울시’와 구청장들 간의 관계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구청장협의회(서초구청장 제외)는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해 “시는 그동안 지속됐던 노인 및 장애인 복지와 임산부 지원 낙후지역을 위한 도시재생 사업, 시민참여를 기반으로 한 민관협치 등 전방위적으로 예산을 삭감했다. 이는 시민참여를 저해하고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가로막는 심각한 행위”라고 규탄했다. 앞서 시는 내년 예산안에 주민참여예산 가운데 구단위 예산은 절반, 동단위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이에 시는 2시간 뒤 반박자료를 내어 “이번 예산 조정은 성과 미흡 등 문제가 드러난 사업들을 바로잡는 것으로 권위주의 회귀이나 민주주의 후퇴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고 일축했다.

서울시 예산안을 둘러싼 시민사회단체들의 시청행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9일 민관협치회의, 서울마을자치센터연합 등이 시청 앞에서 “시민의 시정참여를 부정하고 협치를 외면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튿날에는 서울시민사회네트워크가, 26일에는 428개 노동·시민·지역사회단체 등이, 28일 강북시민행동, 청년정의당 서울시당이, 지난 2일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 등이 이번 예산안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또 지난 4일엔 박근혜 탄핵 정국 때 이후 가장 많은 1200여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해 “시민사회단체 폄훼와 예산삭감을 중단하라”며 반발했다.

문제 일으키고도 ‘꽃놀이패’ 쥔 오 시장?

서울시와 시의회·구청장·시민사회단체 등과 충돌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양쪽의 주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민관협치(사회분야 민간위탁·보조금) 사업의 문제점은 분명한 만큼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시의회·시민단체 등은 ‘전임시장 지우기라는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무리한 작업’이라고 바라본다.

문제 선후를 따져보면, 갈등은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에이티엠(ATM·현금자동지급)기로 전락했다”(9월13일 ‘서울 바로세우기 회견’) 같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서울시와 협력사업을 진행했던 시민단체들을 비판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오 시장은 기자 질문응답 과정에서는 ‘전체가 아니라 일부 시민단체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10년간 1조원’, ‘시민단체 다단계’ 등 자극적 공격은 전체 민관협치 사업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시가 갑작스럽게 민관협치 예산들을 절반가량 깎겠다고 해당 기관에 통보한 때도 오 시장 회견 뒤인 10월 들어서부터였다고 한다. 최정옥 송파구 민관협치회의 민간의장은 “9월까지는 예년과 비슷하게 예산안이 편성될 것 같다던 서울시 담당 부서에서 10월1일부터 입장이 돌변했다”고 말했다.

분란의 실마리를 제공한 당사자지만 오 시장은 정치적으로 잃을 게 별로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산낭비는 시민들이 민감해하는 사안인 만큼 여론전에서 손해볼 게 없고,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나 구청장들과 갈등은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고하고 지지도를 높이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오 시장과 대립각을 세운 시의회나 구청장들로서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정 발목을 잡는다’는 프레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권단체 한 관계자는 “사실 (서울시와 사업을 진행하는) 일부 단체나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오 시장이 시민단체 전체가 문제인 것처럼 치고 나오니 대응이 어렵다”며 “(민관협치 사업 문제제기는) 대선 판 속에서 오 시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놓은 수로 본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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