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관점으로 인간의 시선을 비틀어 보기..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구자혜 연출 [인터뷰]

선명수 기자 2021. 11. 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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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22일부터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동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에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국립극단 제공


“나 역시 그것을 객석에 앉아서 보고 있었다.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 의해 몇 번이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 것. 그 풍경. 나는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내 옆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몰래 훔쳐보았다.”

무대 위에 선 고라니가 말한다. 관객은 객석에서 죽음을 맞은 동물들을 본다. 시험발사 우주선에 태워진 떠돌이 개, 올림픽 개막식 성화 점화 때 불에 타죽은 비둘기, 물을 마시기 위해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임을 당한 고라니…. 그러나 한 치의 연민도, 휘발적인 죄책감이나 신파도 관객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고라니는 이어 말한다. “당신은 아주 조용히 내 죽음의 풍경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묻고 싶다. 이름이 무엇인지. 내 고통의 구체성이 무엇인지.” “당신이 관심 있는 건, 당신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나 고라니가 아니라, 저기 저 빛과 소리 속 이, 저, 그 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믿는 것의 미감.”

오는 14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구자혜 연출의 신작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제목처럼 동물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다만 연극은 ‘로드킬’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 ‘인 더 씨어터’에 방점을 뒀다. 지난 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구 연출은 “동물의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어떻게 대상화하고 그 고통을 외면해왔는지를 말하고자 했다”며 “비록 비루한 인간의 언어지만 동물의 고통에 다가서고 그것을 전언하려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로드 킬 인 더 씨어터>의 한 장면 | 국립극단 제공

무대를 이끌어가는 건 죽음에 내몰린 동물들이다. 11명의 배우는 장면에 따라 동물로도, 사람으로도 등장한다. 배우들의 독특한 어조와 생경한 끊어 읽기 방식, 서사보다 발화 자체에 집중한 연극은 죽음의 비극성에 관객이 몰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올해 백상연극상을 수상한 최근작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를 비롯해 동시대의 사회적 소수자 이슈를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을 발표해온 구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동물의 ‘소수자성’에 주목했다. 그는 “관객들에게 슬픔을 주려고 만든 연극이 아니라 발언권이 없었던 존재들에게 발언권을 주기 위해 만든 연극”이라고 말했다. “ ‘인식론에 대한 이야기’라는 관객 후기가 인상적이었다. 원했던 후기였다. 이 연극은 동물권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인간이 동물의 죽음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저변에 깔고 희곡을 썼다. 배우들이 소리를 지르든, 드라마적으로 연기를 하든 극장이란 환영 안에서 관객들은 그 내용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 고통의 당사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그것을 밀어내는 장치들을 (공연에) 담으려 했다.”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대표를 맡고 있는 구자혜 연출.  국립극단 제공


낯선 말하기 방식, 맥락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동물들의 대화에 관객은 한동안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극은 동물의 이야기다. 무대 위에 선 ‘비동물’ 배우들도 동물을 연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고 동물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흉내내진 않는다. 구 연출은 “작품에 드라마적 호흡을 제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극에 드라마적 호흡이 들어가면 고통의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고통을 겪는 자에게 마음이 흐르게 된다. 슬픔의 정서가 배우 단위에서 흐르고, 그것이 극장으로 가득 차고…. 공연을 보면서 감정의 거리 조절이 안 된다. 그건 이 공연의 지향점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을 놓고 골몰한 작품이다. 극 중 고라니의 말처럼, 연극은 동물들의 입을 빌려 ‘관람 대상이 된 타자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맞는 동물에게 씌워지는 ‘피해자의 전형성’도, 그것을 목격하는 관객의 연민 어린 시각도 허용치 않는 연극은 도리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수많은 동물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과연 동물이 겪는 ‘고통 그 자체’일까. 연극은 그렇게 동물 희생의 수혜자인 인간이 가져야 할 죄의식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고, 극장 밖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곱씹게 한다. 세월호를 비롯해 사회적 참사를 꾸준히 연극 무대에서 다뤄온 구 연출은 “누군가의 고통을 예술의 미감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계속 경계해 왔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을 무대에 올리지만 동시에 극장 밖에는 분명 그 고통을 겪는 이가 존재한다. 이 작품을 쓰고 배우들과 초반 리딩 때부터 대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상화라는 게 무엇인지, 그걸 피할 수 있는지, 재현하지 않고 재현의 윤리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는지…. 대상화를 경계하고, 피해 당사자의 전형성에 갇히지 않으면서 연극적 관습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했다. 배우들이 동물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 고통의 당사자가 되기보단 그 고통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지 문제 제기하는 것에 주력했다. 동물을 연기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동물이 아니고, 우리가 가진 도구는 언어밖에 없다. 동물의 고통을 어디까지 상상해 언어를 벼릴 수 있는지 고민했고, 배우들은 그 말을 잡고 자신의 고민과 해석을 밀어붙였다. 실험적으로 들리는 배우들의 발화 방식 역시 극에 대한 배우들의 해석과 사유의 결과다.”

공연의 전 회차를 배리어 프리로 진행한다. 수어통역사 2명이 무대 위에 서며, 한글 자막과 음성 해설이 진행된다. 공연 시작과 함께 무대에 선 배우들은 약 10분간 무대의 생김새나 배우의 동작, 가장 자극적인 소리와 빛까지 구체적인 시청각 정보를 설명한다. 구 연출은 “접근성에 있어 완전히 ‘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배리어 프리’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면서도 다양한 관객층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화 통역이나 자막은 그 언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자체를 가시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장을 찾은 장애인 관객이 없는 날이라고 해도 계속돼야 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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