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게임 개발자 '메타버스 올인' 선언한 저커버그에 경고 날리다

인현우 2021. 11.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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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기술 상황 힘든데..메타버스는 '뜬구름 잡기'"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능에 집중하고 최적화해야"
"VR기기는 게임용.. 소통용으론 적합치 않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공개된 영상에서 '메타버스' 속 자신의 아바타와 대화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변경하고 '메타버스 건설'을 천명했다. 유튜브 캡처

페이스북 자회사인 가상현실(VR) 기기 개발사 '오큘러스'가 페이스북에 인수되기 전 창립자이자 현재는 기술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존 카맥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메타버스 올인'을 우려했다. 그것도 페이스북의 연례 콘퍼런스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놓고 회사 방침에 부정적인 어조의 연설을 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카맥은 1인칭 슈팅 게임(FPS)의 실질적 창시자로,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오랫동안 '가상 세계'를 구현해 온 게임업계에서는 '메타버스'라는 이름 아래 쏟아지는 개발 자원과 투자에 마뜩찮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카맥이 이런 여론에 힘을 보탠 것이다.


"지금 기술로는 '메타버스' 구현 무리... 가능한 것부터 해야"

페이스북 산하 오큘러스 VR의 창립자이자 고문인 게임 개발자 존 카맥이 지난달 29일 공개된 영상에서 메타버스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카맥은 지난달 29일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공개된 연설에서 "메타버스 구축을 시작하는 것이 실제로 메타버스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메타버스'라는 '뜬구름 잡는 개념'보다는 당장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카맥은 현재 기술 수준이 저커버그가 제시하는 '메타버스'의 이상을 바로 구현하기는 사실상 무리라고 봤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현재 VR를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호라이즌 월드'나 '호라이즌 워크룸'이 "한자리에 16명만 모아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대화할 수 있는 실제 회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모든 게 망가진다"며 "18명이 모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자회사 오큘러스의 기술자문인 존 카맥이 지난달 29일 연례 콘퍼런스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페이스북 VR용 프로그램인 '호라이즌'을 통해 청중과 대화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카맥은 메타버스가 "건축설계 우주비행사(architecture astronaut)들을 잡아두는 덫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건축설계 우주비행사'란 고도의 수준에서 이야기만 추상적으로 내놓고, 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세부 기술 여건을 따져보지 않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는 "메타버스에서 작업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은 메타버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무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충족하기보다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하고 이를 위해 최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카맥은 기존에 나와 있는 호라이즌 시리즈를 가다듬어 '쓸 만하게'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VR로 소통하기엔 부팅 너무 오래 걸려"

페이스북 직원이 미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에서 오큘러스가 개발한 VR 기기를 착용한 모습. AFP 연합뉴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올인'을 천명했지만, 바로 메타버스 분야를 지배하기는 힘들것으로 보인다.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 'VR챗' 등 게임 기반으로 앞서 나간 경쟁자들이 이미 여럿 있고, 중국의 텐센트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나마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사업에서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현재 1,000만 대 가까이 팔린 오큘러스 VR의 VR기기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메타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기기일 뿐이라서 페이스북이 '온라인 플랫폼'인 메타버스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올인'을 풍자하며 '실제 메타버스는 상상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는 트위터.

카맥은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VR기기가 VR 게임용으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수억 명이 이용하는 소통 플랫폼에 적절한 기기가 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VR용 고글을 장착하기도 쉽지 않고, 구동(부팅)도 느려서 스마트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맥은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데 2초 대신 2분이 걸린다고 생각해보라"며 "VR는 (그렇게) 구동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카맥은 '메타버스'가 하나의 기업이 주도하는 단일 개체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메타버스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로블록스처럼 하나의 범용 애플리케이션이 있는 것"이라면서도 "하나의 프로그램이 모든 것(메타버스 전체)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저커버그가 결정했으니 돌이킬 수 없어"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최고경영자(CEO)는 존 카맥과는 달리 메타버스 낙관론자로 유명하다. 오클랜드=AP 연합뉴스

다만 카맥이 VR나 메타버스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어쨌든 회사로서 페이스북이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왔다는 점은 인정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지금이 메타버스를 구축할 때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거대한 바퀴가 굴러가고 있고, 엄청난 자원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일단은 내년 '페이스북 커넥트'를 메타버스에서 개최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카맥의 논평이 공개된 이후 'PC게이머' 등 일부 게임 언론은 '메타버스 회의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라고 모두가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메타버스의 개발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CEO)는 카맥의 논평이 공개된 날 트위터의 프로필을 '건축설계 우주비행사'로 고쳤다. 카맥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꼰 셈이다. 스위니는 "소프트웨어 설계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벽돌 같은 존재"라며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선 이런 건축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두 개발자의 의견 차이는 개발 철학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카맥이 '둠' '퀘이크' 같은 개별 타이틀로 FPS의 표준을 만들었다면 스위니는 3D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개발 도구인 '언리얼 엔진'을 제작해 명성을 날린 개발자다. 한국의 '블레이드앤소울'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등 여러 유명 게임이 모두 언리얼 엔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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