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표현 빼고..나가사키에 세워진 한국인 위령비

유성재 기자 2021. 11. 6. 20: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76년 전인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됐습니다.

당시 사망자 중에는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오늘(6일)에서야 세워졌습니다.

일본 규슈 남쪽 나가사키시 상공 500m에서 원자폭탄 '팻 맨'이 폭발해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었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커>

76년 전인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됐습니다. 당시 사망자 중에는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오늘(6일)에서야 세워졌습니다.

유성재 특파원이 나가사키에 다녀왔습니다.

<기자>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02분.

일본 규슈 남쪽 나가사키시 상공 500m에서 원자폭탄 '팻 맨'이 폭발해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었습니다.

이 폭발로 7만 4천 명이 숨졌는데, 이 가운데 최대 1만 명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일제가 조선소 등 군수 공장과 탄광으로 강제로 끌고 온 노동자도 있었고,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자도 있었습니다.

[권순금/(95세) 원폭 생존자 : 펑 하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까 하늘이 캄캄해. 온통 검은 구름이 있었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원폭이라고 하더라고요.]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건너편, 폭심지에서는 300m 떨어진 곳에 오늘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일동 묵념!]

건립 움직임은 재일 민단을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본격화했지만, 초기에는 일본 측이 장소를 내주지 않았고, 2010년 이후에는 비문의 '강제 징용'이라는 문구를 트집 잡아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결국 위령비 건립은 '강제'라는 표현을 뺀 뒤 올해가 되어서야 급물살을 탔는데, 영어 설명에는 강제성을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이희섭/주후쿠오카 총영사 : 면목없는 후손들이 오늘 이곳 나가사키 평화공원 끝자락에 뒤늦게나마 쉬실 곳을 마련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지난 1979년 일본 시민운동가들이 조총련과 세운 조선인 추도비가 있지만, 우리 정부 지원으로 위령비가 건립된 것은 처음입니다.

[신카이/나가사키 평화자료관 부이사장 : 남북이 지금처럼 (추도가) 엇갈린 것은 역시 일본 식민 지배의 책임인 것이죠. 사실은 일본 측에 원인이 있는 겁니다.]

(영상취재 : 한철민, 영상편집 : 이홍명)    

유성재 기자venia@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