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으로 그만 미뤄" 지지부진 기후논의에 시민들 거리로

김민제 2021. 11. 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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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6 글래스고 통신][기후행동][COP26 글래스고 통신 17]
5일 글래스고 기후집회에 수만명 시민 참여
글래스고 캘빈그로브 공원 가득 채운 인파
"지금 당장 행동해야" "석탄 석유 이제 그만"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 켈빈글로그 공원에서 출발한 기후파업 행진은 2.5km를 걸어 조지광장까지 이어졌다. 최우리 기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기후정의!”

지난 5일(현지시각) 11시30분, 영국 글래스고 켈빈그로브 공원과 그 주변 거리가 수만명(주최 쪽 추산)의 인파로 가득 찼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등 기후운동단체는 이날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을 맞아 세계 지도자들의 기후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기후 파업’(Climate Strike) 집회를 열었다. 시민들은 “석탄과 석유는 이제 그만”(No more coal, no more oil)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멈춰라”(Stop green washing) “어쩌고저쩌고 말만 하지 말라”(No more blah blah blah) 등의 구호를 외치며 조지 광장까지 2시간 여 동안 2.5km를 행진했다. ‘지금 당장 행동하라’ ‘우리의 지구는 우리 손에 달렸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우리는 녹고 있다’ ‘지구를 죽이는 것을 멈춰라’는 팻말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 켈빈글로그 공원에서 출발한 기후파업 행진은 2.5km를 걸어 조지광장까지 이어졌다. 최우리 기자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켈빈그로브 공원에 모인 이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멸종반란’(XR·Extinction Rebellion) 같은 기후운동 단체 소속의 활동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가족 단위의 참가자도 흔했다. 영국 시민 외에도 칠레, 필리핀, 브라질, 우간다 등 먼 나라에서 찾아온 이들도 보였다. 이들은 물 부족 문제나 해수면 상승처럼 저마다 처한 기후위기 상황을 알리는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인근 주민들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구호를 함께 외치며 시위대를 응원했다. 다채로운 사람들이 한 데 모인 대규모 축제와도 같은 모습은 청소년·청년 혹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소규모 집회가 이뤄지는 한국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 켈빈글로그 공원에서 출발한 기후파업 행진은 2.5km를 걸어 조지광장까지 이어졌다. 최우리 기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부나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이 주로 나왔다. 영국 데본에서 부인과 함께 시위에 온 톰(69)은 “이미 우리는 호주와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많은 이상기후를 목격해왔다. 이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내년, 내년, 내년’으로 미루는 것을 멈추고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톰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캐리더스(69)는 “이런 시위는 우리 나라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다. 그만큼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파업에 참여한 글래스고 대학생들. 최우리 기자

기후운동 단체인 ‘멸종반란’(XR·Extinction Rebellion) 활동가이자 북아일랜드 주민인 아담 코드레이(38)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들이 정직하지 않은 게 가장 문제”라며 “그들은 기업과 자본, 자기 자신의 평판을 위해 행동하고 기후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파업에 참여한 아일랜드 컴퓨터엔지니어링 일링 깁슨. 지난 목요일에 글래스고에 왔고 주말 이후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 그는 그린뉴딜이 기업을 위해서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우리 기자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컴퓨터 엔지니어 일링 깁슨(60)은 그린뉴딜은 그린워싱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그린뉴딜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세금을 기후위기 대응에 쓰지 않고 기업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No War·No Warming(전쟁 반대 온난화 반대)’ 라고 적힌 분홍색 천을 등에 붙인 매리(66)은 5시간 거리의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이날 왔다고 했다. 전쟁 과정에서도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며 인권 침해가 있다며 이 행진에 동참했다.

기후시위는 단순히 기후변화 대응만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켰던 화석연료로 상징되는 기존 성장 담론과 현대사에 대한 총체적 문제의식이 집약돼있다. 그래서 전쟁, 자본주의, 육식 문화, 인종차별, 남성중심주의에 반대하는 등 현 사회구조에 대한 개혁적 성향을 가진 시민들의 해방구같은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받은 소식지나 전단지 등을 보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들이 빼곡했다.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파업에 참여한 마틸다(8)와 아빠. 최우리 기자

어린 학생들도 가족과 함께 시위 현장을 찾았다. 여동생과 이번 시위에 참여한 에바 파넬(14)는 “정치인들이 기후를 중요하게 다뤄야 하고 우리가 그들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브라질의 숲을 그만 파괴하고 탄소배출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파넬은 인터뷰를 마친 뒤 “석탄과 석유는 이제 그만”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부모님과 처음 시위에 참여해봤다는 마틸다(8)는 아빠와 함께 행진에 나섰다. 그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닥에 깔린 현수막에 ‘Help the Palnet’(지구를 도와줘)라고 적었다. 글래스고 서쪽 지역에 사는 시민이라는 마틸다의 아빠는 “오늘은 비가 안 오고 날씨가 좋아 다행”이라며 “COP26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5일(현지시각) 글래스고에 찾아온 칠레 대학생 마리아 베니테스(25·오른쪽)와 동료들. 이들은 청년과 여성들이 기후위기 대응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청소년이나 여성이 기후위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지만 정작 정책 결정의 장에서는 소외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COP26을 맞아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칠레에서 글래스고로 날아온 마리아 베니테스(25)는 “청년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기후 정책을 결정할 공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니테스는 “젊은 청년들을 사진 찍을 때만 부르지 말고 실제로 정책을 논의하는 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이들을 위한 기후위기 해결책을 찾으라고 요구하기 위해 글래스고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베니테스는 칠레의 다른 여성 동료 4명과 함께 ‘물은 인권이다’ 같은 구호를 외치며 조지광장까지 걸어갔다. 이곳 글래스고 대학에서 엔지니어링 등을 전공하는 마르다(19)와 제니퍼(21), 파이퍼(19)는 다리 위에 올라 축제를 즐기듯 웃으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5일(현지시각) 기후파업 시위에 참여한 코드레이 아담 멸종반란 활동가가 멸종반란 로고가 그려진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김민제 기자

약 2시께 도착한 행진 끝에 도착한 조지광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브라질·파키스탄·아르헨티나·콜럼비아·파퓨아뉴기니 활동가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파푸아뉴기니 활동가는 “무엇이 혁신이고 개발이냐, 석탄과 광산때문에 아마존의 숲이 파괴되고 있다. 우리는 기후 희생자가 아니라 리더가 될 것이고 우리의 생태계를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질 활동가는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로는 여기에 없다. 그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긴급 상태이고 무너지는 중”이라고 외쳤다.

우간다 청소년기후활동가 바네사 나케테가 5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조지광장에서 열린 기후파업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우간다에서 온 기후운동가 바네사 나카테는 “우간다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며 농장이 파괴되고 있다”며 “아프리카는 세계 탄소배출량의 극히 일부만 기여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은 주요하게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계 각국에서 온 활동가들이 주먹 쥔 손을 높이 쥐고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면 사람들은 환호했고, 발언대 옆에는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한 음악대가 흥겨운 연주를 했다.

기후운동과 미래세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기후운동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5일 행진과 시위는 끝이 났다. 행진을 지켜보던 시민 카일(33)은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어 괜찮다. 시위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동의한다. 툰베리에 대해서도 긍정적 감정”이라고 말했다.

6일 글래스고 행진에 참여한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청년들과 어린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후위기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부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글래스고/김민제 최우리 기자 summer@hani.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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