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스타벅스 등 잘나가는 회사는 직원 소지품 뒤질 수 있다?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2021. 11. 6. 19: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내 규정에 포함된 '소지품 검사 조항' 논란
도난방지 목적 vs 헌법 기본권 침해
[사진=연합뉴스]
[방영덕의 디테일] "어디 가시는 거죠?"

10여 년 전이었습니다. 백화점 문이 열리기 한참 전 첫 출근을 하던 날, 제지를 당했습니다. 출입기자라고 하니 명함을 요청했었죠. 불과 몇 초 사이였지만 저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던 보안요원으로 인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백화점과 대형마트 직원들은 이 같은 의심 어린 시선을 매일 받았습니다. 아예 가방 속 소지품을 탈탈 검사받고 퇴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소지품 검사 조항.' 직원들의 취업규칙 중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취업규칙은 근로자가 지켜야 할 복무규율과 노동조건을 사용자가 정한 것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퇴근하는 직원의 가방 소지품을 출퇴근 시 혹은 필요할 때 검사할 수 있습니다. 소지품 검사를 부당히 거부한 경우 회사 출입을 아예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취업규칙이라고 할 수 있죠.

[사진=픽사베이]
유통기업에서 이 같은 조항을 마련해둔 이유는 '도난 방지'를 위해서입니다. 수백, 수천만 원의 상품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견물생심이 들 수 있습니다.

비록 가격은 얼마 안 나가지만 도난이 반복되면 그 역시 고스란히 기업 손실로 돌아옵니다. 그리하여 소지품 검사 조항을 두는 게 불가피하다는 게 유통기업의 입장입니다.

문제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 CCTV 등의 보안시설이 마련돼 있음에도 도난 방지를 위한 사내 규정이 여전히 존재하는 유통기업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국내 코스트코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차례로 가방을 열고 안에 든 물건을 회사 측에 보여줍니다. 코스트코는 잘나가는 미국계 대형 유통업체입니다. 코스트코 노동자들은 이를 두고 인권침해라 비판하며 쟁의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의 얘깁니다.

스타벅스코리아 역시 최근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취업규칙에 이 같은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 측은 소비자들의 안전 차원에서 만든 조항으로 단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고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행일 뿐이란 얘깁니다.

[사진=픽사베이]
경찰이 아닌 회사가 사원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게 과연 법적으로 타당한 것일까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고 헌법에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의 소지품 검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운동선수 코치나 의료기관의 소지품 검사에 대해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했다고 봤습니다. 형법상 강제 수색 시 처벌받을 수 있죠.

실제로 유통기업 현장에서 직원의 절도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 후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하면 됩니다. 회사가 먼저 수사에 나설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회사와 직원들이 합의해서 취업규칙에 소지품 검사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만들었더라도,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항은 만들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일부 유통기업에서는 허가 없는 유인물·문서 게시, 배포 금지, 허가 없는 정치운동 참여 금지 조항도 있다고 합니다. 모두 다 헌법상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것들입니다.

누군가가 날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가방을 뒤져본다면, 이는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10여 년 전은 물론 현재 젊은 구직자들의 감성과는 더욱이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헌법 위의 취업규칙이 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