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 잠드소서"..나가사키 韓 희생자 위령비 동포 힘 모아 결실

이경아 2021. 11. 6. 17: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커]

일본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한국인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동포들의 힘으로 세워졌습니다.

강제동원 등으로 끌려와 숨진 이들을 위로하는 비석이 서기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는데요.

나가사키에서 이경아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기자]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7만 명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권순금 /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 큰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원자폭탄'이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당시 원폭에 스러져 간 한국인 희생자는 최대 만 명.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 동포들의 손으로 처음 세워졌습니다.

위령비를 세우자고 뜻을 모은 뒤 30년 가까이 지나 이룬 결실입니다.

[강성춘 / 나가사키 민단 단장 : 동포 사회가 염원해 온 위령비가 세워져 감개무량 합니다. 추도할 수 있는 장소가 이제야 생겼습니다. 원폭에 돌아가신 선조들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겁니다.]

한국과 교류를 이어온 일본 고교생들은 천 마리 학으로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오오쿠마 유카 / 나가사키 고등학생 평화 사절단 : 한일 관계나 과거의 역사 등을 계속 배우지 않으면 안되고, 알아야 할 책임이 제게는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인 희생자 다수는 이 지역 조선소 등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강제징용'이라는 말은 비석 안내문에 담지 못했습니다.

시 당국이 이 문구에 난색을 표해 '자신의 뜻에 반해서'라는 표현으로 바뀐 겁니다.

1970년대 일본 시민단체가 세운 추도비에 남은 문구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일본 내 역사 인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신카이 토모히로 /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 과거를 고치려는 또는 부정하려는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 우익들의 사고방식입니다만 지금의 일본 정부가 이 '역사 수정주의'에 올라탄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원폭의 비극 그 한가운데는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역사를 위령비는 존재 그 자체로 일본 사회에 말하고 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YTN 이경아입니다.

YTN 이경아 (kalee@ytn.co.kr)

[저작권자(c) YTN & YTN plu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코로나19 확진자 및 예방접종 현황을 확인하세요.

연예인 A씨와 유튜버의 싸움? 궁금하다면 [웹툰뉴스]

깔끔하게 훑어주는 세상의 이슈 [와이퍼]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