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GDP -9.7%.. 브렉시트 그늘 짙어진 英 경제 [세계는 지금]

이지민 2021. 11. 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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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2배 이상 하락
정부 부채로 세금 40년 만에 최대 인상 추진
존슨 총리 산업에 무지.. 기업인들 등돌려
주유 대란·슈퍼마켓 선반 텅 빈 채 방치
국민 절반 가까이 "브렉시트 경제 악영향"
코로나사태 회복으로 올 성장 반등 조짐
재무부, 2022년 121조원 규모 경기부양 예정
정부 자신감과 달리 수출기업들은 곡소리
이민 장벽으로 화물·서비스업계도 타격
영국을 덮친 공급난으로 런던 시내 슈퍼마켓의 선반이 텅 빈 모습. 아이뉴스 화면 캡처
“이 정부는 더 이상 보수당 정권이 아니다.”

영국 피자 체인 피자익스프레스의 전 회장이자 자산운용사 리스크캐피털파트너스의 공동 창업자 루크 존슨 회장은 보리스 존슨 영국 내각을 이렇게 평가했다. 존슨 회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강행한 존슨 총리의 전략을 공개 지지한 몇 안 되는 기업인 중 한 명이다. 적극적 지지자였던 그마저 등을 돌릴 만큼 친시장적이라고 알려진 집권 여당 보수당이 기업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올해 40년 만에 최대 폭의 세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불어난 정부 부채를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법인이 져야 할 부담도 늘었다. 여기에 존슨 총리의 동떨어진 현실 감각을 드러내는 발언이 나오면서 산업계는 더 냉담한 반응이다. 지난달 존슨 총리는 BBC와 인터뷰에서 최근의 공급난과 관련해 “기업들이 저임금·저숙련 노동력에 익숙해져 있다”며 “현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시장 몫”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경제연구소 경제경영연구센터(CEBR)의 경제학자 비키 프라이스는 “존슨 정부는 도무지 기업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산업에 대한 무지, 혹은 무관심은 그가 총리가 되기 전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2018년 존슨 총리가 외무장관인 시절 브렉시트와 관련한 산업계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망할 기업들”이라고 욕설을 섞어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지난해 1월 31일 브렉시트 단행 이후 전환 기간을 가진 영국은 올해 1월 EU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브렉시트 이후 첫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영국은 공급난에 어수선하기만 하다. 지난달 초까지 주유 대란으로 주유소마다 긴 행렬이 줄을 이었고, 선반이 텅 빈 채 방치된 슈퍼마켓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코로나19 회복으로 수요는 급증하는데 브렉시트 여파로 물류를 운반할 인력은 턱없이 모자란 탓이다.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보다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여론도 지배적이다. 여론조사기관 오피늄이 지난달 27~29일 영국 성인 2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줬다고 응답한 비율이 44%에 달했다.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비율은 25%에 그쳤다.
◆올해 경제성장률 반등, 민간 소비 덕… 무역은 곡소리

지난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9.7% 역성장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1년과 같은 수준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4.2%)과 비교해서도 하락 폭이 2배 이상 컸다. G7(주요 7개국) 중에서도 최악의 성적이었다. 코로나19에 더해 브렉시트의 상흔이 깊이 남은 결과였다.

올해 코로나19가 회복하면서 영국의 성장률은 크게 반등할 조짐이다. 존슨 총리도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영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7%로 추산한 점을 언급하며 “G7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자찬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런던=AFP연합뉴스
최근 영국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서도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읽힌다. 영국 재무부는 750억파운드(약 12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담긴 내년도 예산안을 공개하며 “코로나 이후 새로운 경제와 낙관의 시대를 대비하는 작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으로 세수 확대를 기대한 대규모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월 발표한 4.0%에서 6.5%로 올려잡았다. 1973년 이래 최고치다.
정부의 자신감과 달리 수출에 의존해 온 기업들은 곡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U로 수출길이 막힌 영국의 산업 현장을 조명했다. 영국 웨스트미들랜즈 지역에 기반을 둔 도매업체 라이언크로프트는 브렉시트 전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등 EU 지역에서 연간 수익의 4분의 1을 창출했다. 브렉시트 이후 관세사 직원을 추가 고용하는 데만 수천달러가 들자 라이언크로프트는 EU로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영국 내 수출업체들은 울상이지만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CPB)이 발표하는 교역량 지수는 코로나19 회복세로 전 세계 무역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 교역량은 올해 7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보다 4% 높았다.

문제는 영국이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올해 1월부로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완전 탈퇴한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무역이 활성화하는 이 시점에 철저히 소외돼 있다. CPB에 따르면 7월 기준 영국의 수출량은 2019년 말 대비 16% 줄었고, 수입은 보합을 유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수출량이 4% 줄었고, 수입량은 7% 증가했다. EU 지역의 수출량은 보합, 수입량은 2%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의 가브리엘라 디킨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 세계적인 수요 증가의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정부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지난달 27일 내년도 예산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피하기 위해 물류업계 지원책을 내놨다. 2023년까지 차량소비세를 동결하고 유류세 동결과 화물용 도로 부담금 부과를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단행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운송업체들은 영국이 수십년 만에 가장 심각한 공급난에 직면했다며 이 같은 조치로는 역부족이라고 토로한다. 도로운송협회가 추산한 화물기사 추가 필요 인력은 최소 10만명에 달한다. 영국 정부가 지난달 연말 물류 수요 급증에 대비해 외국인 화물기사를 대상으로 임시 비자 5000건을 발급했지만, 업계는 충분한 대처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브렉시트 반대 운동가인 스티브 브레이가 영국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발표 전날인 지난달 26일 런던 총리관저 앞에 변기를 갖다놓고 앉아서 시위하는 모습. 런던=AFP연합뉴스
◆인력난에 돌봄도 차질

인력난이 두드러진 분야는 화물업계이나 브렉시트 이후 강화된 이민 장벽으로 서비스업 곳곳이 타격을 받았다. 그중 피해는 뚜렷하지만 잘 조명되지 않는 분야가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 돌봄 산업이다.

가디언은 영국 잉글랜드 레스터셔주에 사는 뇌성마비 환자 앤 프리드모어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코로나19와 브렉시트가 겹쳐 간병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돼 버렸다. 최근 그는 새 간병인 구하기에 나섰는데 3주간 지원자가 단 2명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이전에는 3주간 20명의 지원자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관련 단체들은 돌봄 산업에서 인력난이 심각한데도 정부가 이민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사회복지 단체인 ‘돌봄을 위한 기술(Skills for Care)’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약 7만명의 영국 국민이 10만명의 돌봄 노동자를 공적 경로를 통해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간병인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척추질환을 앓는 환자를 대상으로 돌봄 고용 노동자를 제공하는 업체인 오리진의 피테 헨리 대표는 “매년 100명 이상을 고용하는데 현재는 50명을 고용하는 수준”이라며 “매일 요양보호 요청을 거절하고 있는데 어제도 3명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털어놨다.

올해 초에도 영국 장애인 단체는 정부에 서신을 보내 돌봄 노동 종사자들을 위한 유연한 이민정책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당시 케빈 포스터 내무부 장관은 이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늘리는 이민정책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력 공백은 영국 노동자들이 메워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포스터 장관의 말대로 외국인 인력 공백의 일부는 내국인으로 충당되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턱없이 모자란 게 문제다. 개인 돌봄 고용 노동자 중개업체를 운영하는 케이티 에더링턴은 “브렉시트 뒤 더 많은 영국인이 돌봄 고용 구직에 나서긴 했지만, 빠져나간 유럽인들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이민 규제로 신규 외국인 고용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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