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생략한, 플랫폼에 생략된 노동

한겨레 2021. 11. 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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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플랫폼 가사노동자 재은씨
지난해 6월 가사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법적 권리와 생계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몇해 전 어느 날 재은(가명)씨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사서비스 광고를 보았다. 그 며칠 뒤에는 가사노동자를 양성하는 교육장을 찾았다. 함께 교육받은 40여명은 모두 여성으로 40~60대였다. 교육을 마치고 회사가 개발한 매니저용 앱(응용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매니저·파트너·클리너로 불리는, 플랫폼 가사노동자가 되었다.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처음 일한 집에서 무척 고마워했어요. 내가 청소하는 동안 아이들과 진짜 마음 편하게 외식했대요. 맞벌이라 주말에만 시간이 나는데 청소가 스트레스였겠죠. 우리 애들 어릴 때 ‘아! 누가 와서 청소 한번만 해주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간절했어요. 남자들은, 애들이랑 뭐 하는데 집이 이 꼴이냐 그러죠. 나도 좀 나만 있고 싶고 쉬고 싶은데, 애들 돌보면서 집안일까지 완벽해야 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날 그분을 보면서 저렇게 좋을까 싶어, 일이 더 많아도 아이 있는 집을 다녔어요.”

돈 버는 일 말고도 오랫동안 청소년 관련 자원봉사를 해왔다. 돈 버는 일이지만 청소 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앱은, 무심하겠지만…. 매니저가 된 재은씨는 수시로 앱을 확인하고 공지도 숙지해야 한다.

“매니저용 앱을 설치하면 지역과 거리를 생각해 업무를 선택해요. 주말에도 일이 올라오니까 누군가에게 여긴 주 5일이 아니라 주 7일이에요. 아침에 눈 뜨면 앱을 보죠. 앱이 막 울려요. 가깝고 교통 좋은 곳, 시간 넉넉한 일은 금방 사라져요. 좀 멀면 운전해서 가요. 한집에서 4~6시간 일하고, 회사가 시급으로 계산해서 입금해줘요. 어떤 일은 보너스가 붙어서 올라와요. 회사가 붙이는 거죠. 난 5천원에서 3만원까지 봤어요. 이런 정보는 처음에는 안 보여요. 일도 적고, 먼 곳 일만 보이죠. 일한 기간이 늘고 고객 평가도 좋으면 내 앱에 보이는 일자리도 많아지고, 보너스 정보도 더 보이죠. ‘근처 묶음’이라고 연이어 일하게끔 묶음 형태로도 일을 보여줘요. 평가가 안 좋으면 그 반대겠죠. 두달 동안 일을 안 하면 자동 탈퇴, 앱이 작동하지 않아요.”

시급 1만1천원. 이곳 매니저는 ‘플랫폼 종사자’이지 노동자가 아니다. 4대보험도, 법정수당도 열외다. 내년 6월부터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이 시행돼 이런 권리를 보장받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법을 적용받는 이는 정부가 인증한 업체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뿐이다. 지금 재은씨에겐 시급이 전부이니, 시간이 임박하면 점점 더 오르는 보너스를 조마조마 지켜볼까.

“시급 1만5천원에서 1만3천원 사이면 열심히 다닐 것 같아요. 전에 직업소개소에서 식당 설거지, 청소 파출 일을 해봤어요. 돈은 비슷해요. 근데 거긴 일하고 받은 돈에서 내가 수수료를 떼어 소개소에 입금하잖아요. 그 과정을 겪으면 ‘아, 죽도록 일은 내가 하고 소개소는 전화 한 통화로 돈을 가져가네’가 돼요. 플랫폼은 그 단계가 생략되잖아요. 회사가 고객에게 얼마를 받는지, 얼마를 제하고 주는지 내 눈에는 안 보이고, 나는 앱으로 들어오는 내 시급만 봐요. 그 한 단계가 없어지니까 뺏기는 기분이 덜 든다? 일거리도 여기는 앱에서 내가 지역·시간·조건을 따져서 선택하고 가기 싫은 곳은 피하니까, 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누군가 오래 쓰다듬은 살림, 그 마음 헤아리며 먼지 닦지만
4대보험도, 법정수당도 열외…초과노동·불법촬영에도 무방비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재은씨는 그랬다. 누군가 오래 쓰다듬은 살림, 노쇠하고 아파 더는 손길 얹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마음을 헤아리고 방방이 경첩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는다. 이야기와 숨결이 쌓인 누구네, 집에 다시 깃들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자기 노동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데도.

“앱이 책정한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매뉴얼은 업무 동선에 따라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라지만, 그곳에 일이 많으면 어렵죠. 최소 10분 이상 일찍 일을 시작해요. 내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걸 지켜봤어도 ‘어머나! 매니저님 시간 다 됐어요, 그만하고 가셔요’ 그러는 고객님을 만난 적이 없어요. 하나라도 더 시키고 하나라도 더 해주길 바라죠.”

일이 끝나면 고객은 매니저를 평가한다. 청소를 주도할 매니저에게 고객이 자기 방식을 강요해 시간을 끌거나, 약속한 업무 이상을 요구해도 거절하지 못한다.

보상받지 못하는 초과노동이 일상이듯, 불법 촬영과 성폭력이 일상인 사회에서 방문노동자의 공포도 일상이다. 재은씨는 앱에서 일을 잡을 때도, 결정한 일을 하러 가면서도 남자 혼자 사는 집이면, 다른 가족은 나가고 집에 남자 혼자 있으면 어쩌나 염려한다.

“신청한 사람과 집에 있는 사람이 다를 수 있잖아요. 두렵죠.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청소가 간편해도 안 가려고 해요. 아직까지 앱에 이런 공지는 없지만, 매니저가 회사에 말한들 공지하겠어요? 회사는 일 잘하는 매니저를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그런 위험 부담을 안을까요? 성범죄자도 신청할 수 있잖아요. 그에 대한 안전장치가 회사에는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걸까요?”

불법 촬영 문제도 마찬가지다. 재은씨는 시시티브이(CCTV)가 없다고 표시한 고객만 선택하지만, 가서는 있겠거니 하고 일한다.

“있다고 체크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걸 생각하죠. 못 믿죠. 다 보고 있는 거 같아요. 가끔 앱 공지에 올라와요. 어떤 매니저가 어땠다고 고객이 시시티브이로 확인한 내용이요. 있다고 했으면 안 했을 행동이죠. 있다고 하면 선택에서 밀리겠으니까 없다고 하겠죠. 있다는 집을 굳이 가고 싶지는 않죠. 나는 한다고 하는데 트집 잡히려면 뭐든 잡히니까요. 내가 싸간 물 한모금을 쉽게 먹겠어요, 청소하다 잠깐 마스크를 내려 숨 쉬겠어요. 욕실 청소를 하면서도 마스크를 끼는데요.”

개인정보보호법이 있어도 매니저는 동의 없이 불법 촬영 당한다. 회사는 매니저를 보호할까. 형식으로라도 있던 시시티브이 유무 항목이 최근 매니저 앱에 안 뜬다.

다시 이 집에 가겠습니까

일을 시작할 때 앱을 열어 업무 시작을, 마치면 업무 종료를 누른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 화면에서 묻는다. 이 집에 다시 가고 싶지 않냐고. 재은씨는 과감히 누른다.

“이 일을 하면서 바라는 건 직업인으로 대우해주는 거예요. 자기가 못 하는 일, 더러운 집을 치워주는 직업으로 인정해주었으면 하죠. 노비처럼 아랫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요. 이 일은 누구나 하는 값어치 낮은 일인데 너는 내가 돈을 주고 시켰어, 그러니까 좀 잘해, 넌 능력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하지, 네가 능력이 있었으면 이런 일 안 하겠지 하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당신들이 못 하는 일을 적은 돈을 받고 일하는데, 수고했어가 아니라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그런 마음을 갖는 대상자면 좋겠어요.”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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