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이터널스' 보며 느낀 낯섦과 익숙함, 그리고 허전함

현화영 2021. 11. 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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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신작 ‘이터널스’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새로운 마블 영화 ‘이터널스’(감독 클로이 자오)가 지난 11월3일 개봉했다. 여러 평가가 오가는 중인데, 영화를 보며 느꼈던 느낌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낯설면서 익숙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는데, 왜 그랬을까?

일단, 마블 영화 맞아?  

‘이터널스’는 분명 마블 영화이지만, 새로운 영화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어벤져스’ 시리즈로 강력하게 연결되는 마블 영화를 20여 편이나 보아왔기 때문인 듯하다. 올해 개봉한 마블 영화만 봐도 마블 영화의 정체성이 쉽게 느껴진다. 

‘블랙 위도우’(감독 케이트 쇼트랜드)는 제목 그대로 어벤져스 멤버인 블랙 위도우가 주인공으로, 누가 봐도 마블 영화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감독 데스틴 크리튼)은 처음엔 좀 낯설 수 있으나,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 맨이 되는 시기와 연결이 되어 있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즉 마블 세계관을 확실하게 공유한다. 

반면에 ‘이터널스’는 마블 세계관을 매우 느슨하게 공유한다. 이터널스 멤버들은 기원전 5천 년에 지구에 와서 인류를 도왔으나, 이후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처럼 지내며 다음 임무를 기다려왔다. 수많은 전쟁이 발발하고, 타노스가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하고, 어벤져스 멤버들이 모든 걸 되돌릴 때까지도 그들은 나서지 않았다. 

영화 초반 이런 설명과 함께 등장한 그들이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다. 그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쿠키 영상으로도 접하지 못한) 초인적인 영웅을 보자니 어리둥절해진다. 물론 이터널스 멤버들을 보다 보면, 아는 이들인 것 같은 익숙한 느낌도 든다. 7천 년 이상 지구에서 살아온 그들이 어쩌면 인류가 신화나 전설, 성경책 속 인물로 인지하고 있던 이들인 것 같기 때문이다. 

낯섦과 익숙함이 뒤섞인 느낌으로 그들을 지켜보면서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마블 영화 맞지?’란 질문도 계속하게 된다.

마블 신작 ‘이터널스’ 공식 포스터 이미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인간은 어디에? 여기 지구 맞나?

이터널스 멤버들에게 공감하며, 스토리에 집중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딴 세상 영웅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외모만 인간의 모습일 뿐, 외계에서 온 외계인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이니 아주 멀리서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마블 영화에서 외계 출신 초능력자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니지만, 이터널스 멤버들 주변에는 아이언 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같은 인간 친구나 동료가 없다. 인간 파트너와 아들, 매니저가 등장하긴 하지만, 중심 캐릭터는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신적인 존재로 등장하다 보니, 인간은 주변인이 된다. 영화 초반 런던 시민들, 중간 중간 회상 속 사람들, 킨고의 영화 촬영 현장에 있던 사람들, 드루이그가 이룬 공동체의 사람들이 잠시 단체로 등장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그들은 대부분 이터널스 멤버의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인간 자체를 자주 볼 수가 없다. 이터널스 멤버들이 대항해 싸우는 존재는 괴물 형태의 존재와 매우 초월적인 우주적 존재다. 외형부터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들이 싸움을 벌이는 공간은 인간이 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대자연의 공간이다. 딴 세상 사람들의 딴 세상 이야기 같다.

이런 익숙함

한편으론 이런 익숙함도 느껴졌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를 ‘유럽 중심성’이나 ‘백인 중심성’을 지닌 인종차별적 영화로 비판할 때, 자주 거론되던 요소가 있다. 

시공간적 배경과 상관없이 유럽 출신 백인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 외 인종은 주변인으로만 등장한다는 점, 주변인이 말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말을 한다 해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자막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점, ‘자연화’나 ‘동물화’된 군중이라고 해서 주인공들의 배경처럼 비백인들이 우루루 등장한다는 점 등이다. ‘이터널스’에서는 인간 즉 지구인이 그런 방식으로 등장한다. 묘한 역설이 느껴진다. 

물론 ‘이터널스’는 매우 혁신적인 영화다. 주요 인물들이 다양한 인종과 성적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 배우 마동석도 길가메시로 출연했다. 중국 출신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했다는 사실도 변화된 시대를 드러낸다.

다만 지구를 놓고 벌이는 초월적 존재들의 이야기다 보니, 인간 관객으로서 왠지 초라함이 느껴지는 면이 있다. 애초에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일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관객은 누구에게나 감정 이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이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좀 있다. 

이 영화에서 마동석 배우를 보면서 반갑다가 낯설다가 하는데, 영화 ‘이터널스’가 그런 느낌을 주는 영화일 수 있겠다. 물론 공감 능력과 취향은 모두 다르니, 나름의 능력과 취향으로 즐겨보길 바란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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