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구나단 신한은행 감독대행의 출사표, "더 높은 승률을 원한다!"

손동환 2021. 11. 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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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는 2021년 9월 9일 오후 2시 40분에 진행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인생의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변화와 마주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변화와 마주한 이들은 변수에 정확히 대처하지 못한다.
구나단 감독대행도 예상치 못하게 인천 신한은행의 사령탑이 됐다. 그러나 준비 없이 변화와 마주한 건 아니다. 신한은행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선수들과 어떻게 목표로 나아가야 할지도 알고 있다. 그게 구나단 감독대행의 최대 강점.
물론, 어려움도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어려운 요소 중 하나. 그렇지만 구나단 감독대행은 다른 긍정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했다. 목표 의식 또한 강하게 다졌다. 그리고 더 강해질 신한은행을 원했다.

캐나다 출신 농구인의 한국 입성기
1982년생인 구나단 감독대행은 어린 시절 캐나다로 건너갔다. 28살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캐나다에서 보냈다.
농구를 처음 접한 곳도 캐나다였다. 선수 시절부터 코치 시절까지 20년 가까이 캐나다 농구를 경험했다.
선진 농구를 접한 구나단 감독대행은 2009년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 농구인들의 생각과 캐나다 농구인들의 생각이 너무 달랐다. 그래서 구나단 감독대행의 충격은 컸다. 그리고 구나단 감독대행은 2015년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 여자 프로농구팀의 코치가 됐다.
그 곳에서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났다. 상해 여자 유소년 대표팀을 맡고 있던 정상일 전 신한은행 감독이었다. 타지에서 정상일 전 감독의 신뢰를 받았고, 정상일 전 감독의 오른팔로 인천 신한은행에 입성했다. 다만, 그 때까지의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캐나다에서 농구를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5살 때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저 역시 일찍 캐나다에 갔죠. 다만, 어머니께서 “한국말은 까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고, 초등학교 때에는 한국에 자주 갔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28살까지 한국으로 간 적이 없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엘리트 농구를 했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상위 클래스(트리플 A)에 포함된 학교였고, 대학교 때는 디비전 1에 있었습니다. NCAA로 치면, 디비전 2에 있는 학교였죠.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발목을 다쳤습니다. 무릎 부상도 있었죠. 게다가 흑인 선수들이 너무 빨랐고, 제 밑에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찍 은퇴를 했죠. 23살 때부터 지도자 생활을 했고, 5년 동안 캐나다에서 코치를 했습니다.
28살 때 다시 한국에 오셨습니다. 캐나다 농구와 한국 농구의 차이를 느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코치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님 친구 분께서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 그리고 한국 농구를 전혀 몰랐습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농구 교류 역시 활발하지 않았거든요. 한국 농구를 접하기 힘든 환경이었기에,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고민했지만, 28살 때 한국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와는 너무 많은 게 달랐습니다. 먼저 제가 캐나다에 있을 때,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한테 기술 발전을 위한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스킬 트레이닝’이죠. 하지만 그 때 한국 농구에는 ‘스킬 트레이닝’에 관련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개념을 한국에 도입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다”고 하셨어요. 그 때만 해도, 많은 한국 지도자들께서 비하인드 백 드리블이나 레그 스루 드리블도 못하게 하셨죠.
또, 제가 외국에서 코치해본 걸 인정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이해했습니다. 제가 한국 농구를 전혀 모르고, 한국 농구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해되지 않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감독님 밑에 있는 코치들이 아무 의견도 제시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제 의견을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그건 잘못된 것 같다”고요. 그런데 한국 문화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국말을 지금보다 더 못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절 좋게 보시는 분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3년이라는 세월을 지냈습니다. 여러 가지를 경험했죠. 저랑 너무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2014년에 결혼을 했고,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여자농구 팀 코치를 맡으셨습니다. 그 때 정상일 감독님과 인연을 맺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문규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뵜었던 지도자셨고, 저한테 코치 제의를 하셨죠. 처음에는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만약에 저를 부르실 거면, 제가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께서 그런 점을 OK해주셨고,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여자 선수들을 맡게 됐죠.
그 때 정상일 감독님께서 혼자 상해 유소녀 대표팀 선수들을 지도하셨습니다. 저희와 같은 공간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그렇게 정상일 감독님의 존재를 알게 됐죠.
그렇지만 그 때만 해도, 정상일 감독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시즌 때는 홈과 원정 경기를 해야 해서, 체육관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2016년에 한국 지도자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정상일 감독님 그리고 이휘걸 코치와 제대로 인사를 나눈 시기였습니다.
그 때 정상일 감독님께서 “상해 유소녀 팀을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정상일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시즌 때 상해 유소녀 선수들의 지도를 몇 번 도와드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정상일 감독님께서 저를 집으로 초대해주셨습니다. 처음으로 한국식 집밥을 얻어먹었죠. 너무 감사했어요. 또, 진솔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전보다 더 친해졌습니다. 감독님을 더 잘 알게 됐고, 더 적극적으로 도와드렸죠.
그리고 감독님께서 40도가 넘는 어느 여름에 “삼겹살을 먹자”며 저를 집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근데 그 날 에어컨이 고장 났고, 남자들끼리 속옷바람으로 삼겹살을 구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더 친해졌어요.(웃음)
그 때 감독님께서 “내가 만약 한국에서 감독을 한다면, 구 코치가 도와줄 의향이 있어?”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서 한국에서 팀을 맡으시면, 제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감독님과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감독님과 친분을 쌓아왔죠.
정상일 감독님과 했던 약속을 지켰습니다. 신한은행의 코치가 되셨는데요.
저는 상해 팀과의 계약을 마쳤습니다. 다른 팀과의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죠. 정상일 감독님께서는 그 때 계약 종료 후 한국으로 들어가셨죠.
제 아내가 2018년에 임신을 해서 한국에 있었습니다. 저는 캐나다에 일이 있어서 캐나다로 갔고요. 그 때 감독님께서 OK저축은행(현 부산 BNK 썸)을 맡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들 돌 잔치 때 한국으로 왔는데, 정상일 감독님께서 보자고 하셨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감독이 됐으니, 구 코치가 꼭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아내한테 물어봤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지도자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아내가 반대하더라고요. “중국에서는 외국인 신분이라 상관없겠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학연-지연이 강한데, 당신은 그런 게 없어서 힘들지 않겠느냐? 굳이 한국에서 지도자를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 않느냐?”라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상일 감독님 그리고 이휘걸 코치와 약속한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한테 “정상일 감독님과 약속한 게 있다. 약속한 게 있기 때문에, 감독님을 도와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잘 되면 한국에서 살 수 있고, 안 되면 캐나다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라고 설득했죠. 아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더라고요.
아내를 설득했고 감독님의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해야 할 게 많았습니다. 제가 캐나다 국적이다 보니, F4 비자(재미교포용 비자)를 취득해야 했거든요. 그게 있어야 한국에서 모든 걸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한은행의 코치가 됐죠.
 

적응의 다른 표현 : 시행착오
구나단 감독대행은 정상일 전 감독과 이휘걸 코치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한 적 있으나, 한국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코칭스태프와의 의사소통 방식, 선수와의 의사소통 방식, 서로가 생각하는 농구의 차이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행착오를 거친 구나단 감독대행은 점점 한국 농구에 녹아들었다.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되, ‘이 훈련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코칭스태프-선수단과 의논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알게 됐다. 그리고 선수단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신한은행의 코치가 됐습니다. 어떤 것부터 적응하려고 하셨나요?
정상일 감독님께서 먼저 “구 코치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게 해주겠다. 대신 한국 농구가 처음이니, 선수들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문하셨습니다.
감독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김단비가 누군지를 몰랐으니까요.(웃음) 그 정도로, 어느 선수가 어떤 장단점을 지녔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이휘걸 코치뿐만 아니라, 하숙례 코치님한테도 많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코치 1년차 때는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어떤 컨셉으로 팀이 돌아가는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2년차 때부터 더 많은 임무를 맡았습니다. 시스템을 만들어가는데 힘을 보탰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농구의 색깔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소통 방식에서의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제가 제시한 의견을 들은 후, 맞다고 생각하는 건 받아들이셨습니다. 대신,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잘된 것 같아요. 이휘걸 코치는 저랑 친구다 보니, 소통이 더 잘 됐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과 저 모두 서로를 알아가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과의 첫 시즌이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신한은행에서의 첫 시즌이 쉽지 않았습니다. 외국 선수 문제도 있었고, 처음 갔을 때 국내 선수 인원이 5~6명 밖에 없었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감독님 그리고 이휘걸 코치와 많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이휘걸 코치가 많은 도움을 실어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휘걸 코치는 한국 문화를 100% 아는 친구입니다. 반면,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캐나다 방식으로 감독님한테 말을 하는 면이 있는데, 이휘걸 코치가 저한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를 잘 알려줬습니다.
또, 제가 감독님한테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니, 이휘걸 코치가 윗분들한테 기분 나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잘 알려줬습니다. 정상일 감독님과 저의 중간에서 그런 역할을 잘 해줬습니다. 이휘걸 코치가 그런 역할을 안 해줬다면, 정상일 감독님께서 저를 싫어하셨을 수도 있어요.(웃음)
여담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그런 것 때문에 저는 아직 여러 감독님 그리고 기자님들과 대화하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너무 직접적으로 할 때가 있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시는 건 아닌지라는 걱정이 들거든요. 다들 제 환경을 이해해주신다고는 하지만, 제 딴에는 소통 방식에서의 고민이 큽니다.
그래도 선수단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소통으로 선수들의 믿음을 얻으신 것 같고요.
처음에는 선수들이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쓰는 농구 용어와 저의 훈련 방식들이 선수들이 배워왔던 틀과 달랐거든요. 선수들을 제 시스템에 맞추다 보니, 선수들이 어색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수들이 ‘왜 이렇게 움직여야 하지? 왜 이 타이밍에 움직여야 하지?’라는 의구심도 지녔던 것 같고요.
하지만 대화는 무조건 필요했습니다. 선수들과 농구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죠. 외국 팀의 경기를 같이 보며, 왜 이 팀이 이렇게 하는지를 공유하려고 했습니다. 소통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들이 ‘왜 이렇게 훈련하고, 왜 이런 컨셉으로 움직여야 할까?’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선수들도 저에게 확실한 믿음을 가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정말 잘 따라주더라고요. 지금은 서로가 100% 믿고 있고, 서로가 스스럼없이 농구에 관한 걸 이야기하고 있어요.

급작스런 변화 그리고 구나단 감독대행이 펼칠 농구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신한은행의 사령탑이었던 정상일 감독이 지난 7월 건강 문제로 자진 사퇴한 것.
소식을 접한 미디어와 선수들 모두 놀랐다. 그러나 구나단 감독대행은 이를 어느 정도 예견했다. 정상일 감독의 건강을 알고 있었고, 정상일 감독으로부터 ‘감독대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제는 감독대행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동시에, 감독대행으로서 신한은행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구나단 감독대행의 컬러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상일 감독이 자진 사퇴하셨습니다.
감독님의 자진 사퇴를 접한 선수들과 기자 분들께서는 갑작스러웠겠지만, 저와 이휘걸 코치는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신 지 조금 되셨거든요.
감독님께서 어느 날 저한테 “감독대행을 맡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을 감독님으로 뽑으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한국 농구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됐고, 많은 분들께서 저를 안 좋게 보실 것 같았습니다. 그게 팀에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저 때문에 팀이 마이너스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렸어요.
그렇지만 감독님께서는 “너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팀을 잘 만들었고, 지금의 시스템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좋아질 수 있다. 감독이 바뀌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고, 그러면 일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하셨어요.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 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선수들한테 “지금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어?”라고 물어본 적 있습니다. 선수들이 “이제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알겠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더 디테일하게 잡아주신다면, 우리는 더 잘할 자신 있다”고 대답했어요. 그 후, 저는 시스템을 더 디테일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일 감독님한테 “감독대행을 맡게 된다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제가 이번 비시즌 내내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언제 사퇴를 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저와 이휘걸 코치가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나갔던 거죠. 그리고 자진 사퇴라는 결과를 알게 됐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었던 거죠.
2021~2022 시즌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가요?
2년 동안 구축해온 시스템을 꾸준히 유지해야 합니다. 다만, 전력에 변화가 생긴 팀들이 변수입니다. 2020~2021 시즌 종료 후, KB스타즈와 BNK 모두 코칭스태프를 교체했습니다. 강이슬이 KB스타즈로 이적했고, 강아정과 김한별이 BNK에 합류했습니다. 저희는 그 변화에 맞게 디테일을 설정해야 합니다.
변화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김)아름이와 (한)엄지, (김)연희 모두 몸이 좋지 않거든요. 엄지는 아직도 운동을 못하고 있고, 연희 역시 무릎이 부어서 운동을 어느 정도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팀이 어느 정도의 불안 요소를 안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변소정을 뽑았습니다. 코칭스태프 모두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요소들을 안고, 시즌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현재 신한은행이 추구하는 시스템의 핵심은 ‘리빌딩’입니다. 감독님께서도 ‘리빌딩’이라는 기조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오기 전, 신한은행은 꼴찌였습니다. 그리고 기존 멤버들이 많이 이탈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왔을 때, 많은 분들께서 저희를 꼴찌로 꼽았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선전했습니다. 리빌딩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지금 역시 부상 선수와 발전해야 할 선수를 많이 데리고 있지만, 이 또한 리빌딩의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 역시 리빌딩에 성공하는 팀이 되려고 합니다.
어느 팀이든 리빌딩을 당연한 작업으로 여길 겁니다. WKBL 6개 구단 모두가 젊은 선수의 성장을 원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선수들이 어떤 훈련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신한은행에 남아있는 한, 선수들에게 어떤 게 필요한지 알려줄 예정입니다. 어린 선수들이 저희 팀에서뿐만 아니라 WKBL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도록,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정상일 감독님의 컬러도 있겠지만, 구나단 감독님의 컬러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상일 감독님의 강점을 당연히 유지해야 합니다. 정상일 감독님께서는 디테일한 수비 전술을 갖고 계시고, 한국 농구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상대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잘 아셨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런 점을 많이 배웠고요. 그런 강점은 절대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 팀에는 좋은 센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두 시즌 동안 스몰 볼을 한 이유였죠. 전력이 변하지 않았기에, 기존의 색깔을 유지해야 합니다. 여기에 보충할 건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올해는 (강)계리가 합류했고, (김)애나와 (유)승희의 몸이 더 좋아졌습니다. 슈팅이 좋은 선수들은 아니지만, 공격적인 농구를 할 수 있습니다. 상대 수비를 부술 수 있는 선수들이죠. 이들의 강점을 살려서, 상대를 공략하는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연희나 엄지 등 장신 자원이 건강하다면, 이들을 활용한 농구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저의 컬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감독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저희는 지난 시즌 3위를 차지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랐어요. 그래서 3위보다 더 높은 순위를 바라보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와 어떤 선수가 기존의 성적에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목표를 크게 잡으려고 합니다. 목표를 크게 잡는다면, 플레이오프에 또 한 번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해보다 좋은 성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시즌(17승 13패)보다 많은 승수를 쌓고 싶습니다. 지난 시즌보다 승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순위로 2021~2022 시즌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팬들한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으로서는 팬들한테 처음 인사를 드립니다. 한국 문화를 많이 알게 됐지만, 여전히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어조와 단어, 자세 모두 부족합니다. 그래서 ‘버릇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팬들께서도 제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농구를 사랑하고 농구에 열정을 지닌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팀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코트에서 늘 열정을 쏟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제공 =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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