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00m 대성당 우뚝.. 중세 도시의 향기 [박윤정의 원더풀 스위스]

- 2021. 11. 6. 09: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⑨ 수도 '베른'
300여년전 옛 모습 그대로 간직
오랜 세월 지켜온 '시계탑' 명물
고딕양식 대성당 종탑으로 유명
내부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344개 계단 올라 종탑 끝 서면
강·녹음 속의 도시 풍경에 탄성
멀리 알프스 만년설도 시야 담겨
중세시대부터 계획도시로 조성되고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베른 구시가지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알프스 인터라켄에서 하나도 아닌 두 호수를 마주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스위스 정취를 맘껏 느꼈다. 인터라켄을 방문한 과거 유명 인사들이나, 괴테와 멘델스존처럼 아름다운 시구와 선율로 감동을 표현하진 못하더라도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청량함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 행복한 여러 날을 마음에 담고 또 다른 스위스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융프라우가 있는 인터라켄 지역을 베르네제 오버란트(Bernese Oberland)라고 부른다. 베른의 높은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이 높은 곳에서 내려와 스위스 수도 ‘베른’으로 향한다. 어릴 적 수도 맞히기 퀴즈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이다. 대부분 취리히라고 대답했다. 취리히, 제네바,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도시였다. 융프라우를 여행하기 위한 가장 큰 도시 인터라켄도 베른과 비교하면 그저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차는 깊은 산길을 타고 낮은 곳으로 향한다. 서쪽 튠 호수를 지나칠 무렵에야 잠시 멈췄다. 마치 숲속 미지의 세계를 떠나듯 호수를 뒤로하고 세상에 들어선다. 환상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정거장처럼 놓인 벤치가 눈에 띈다. 호숫가 벤치는 거대하고 고요한 호수를 곁에서 지키고 있다.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잠시 이곳에 앉아 따듯한 햇살을 느낀다. 융프라우, 안녕!
베른은 스위스 수도이지만 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14세기쯤 취리히와 함께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고 나폴레옹 세력이 물러난 19세기 중반 수도가 되었으니 200년이 채 안 된다.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엄청난 사건을 견뎌내고 200년 아닌 300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도성장을 이룬 현대적인 수도 모습이 아니라 옛 모습을 간직한 베른은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이다. 알프스 자연의 품속에서 벗어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과거로의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베른 구시가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시계탑(치트글로게) 주변에는 매시간 한 번씩 천문시계가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베른에 들어서니 오랜 세월 도시를 지켜온 시계탑(치트글로게·Zytglogge)이 반긴다. 알프스 산속에서 시간을 잊은 지난날을 깨우듯 현실의 시계는 그 자리에서 800년을 지키고 서 있다. 과거와 오늘,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세월의 무게를 함께 버티어 내고 있다. 수리하는 공사구조물들로 시계탑 주위가 어수선하다. 명물인 천문 시계를 제대로 관찰하기는 어렵지만 한 시간에 한 번 작동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시계 중앙에는 별자리 주인공들이 둘러앉아 있다. 주위로 기사, 광대, 곰 등 조각들이 하나둘 움직인다. 옛 방식 그대로다. 한결같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시계의 나라 스위스의 오래된 시계탑은 특별한 의미인 듯하다. 시계탑 아래로 오래된 거리가 길게 뻗어있다. 무려 6㎞로 이어진 아케이드이다. 그 길 어딘가가 아인슈타인의 집이었단다. 현재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베른 구시가지 한 곳에는 아인슈타인의 이름이 새겨진 집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1903∼1905년 이곳에 머물며 상대성이론을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른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대성당도 그 거리에 있다. 스위스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고 소개되는 대성당은 스위스 최대 높이인 100m가 넘는 종탑으로 유명하다.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알프스 수천m 높이도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로 불편함 없이 올랐는데, 이 오래된 성당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고민으로 잠시 머뭇거리다 안내서의 추천을 따르기로 했다. 한참을 올랐는데 아직 계단이 앞을 가린다. 오르고 또 오른다. 254째 계단으로 올라서니 드디어 멋진 전망대이다. 한숨 돌리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좁은 종탑을 향하여 90개 계단을 밟고 오른다. ‘헉헉!’
베른 대성당의 종탑은 100m가 넘는다. 스위스에서 가장 높다. 꼭대기까지 총 344개 계단을 오르면 베른과 주변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다. 오래된 계획도시의 모습, 그리고 스위스에서 가장 긴 아레강, 멀리 알프스산맥까지 만날 수 있다.
대성당 내부.
베른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차오르는 숨을 차가운 공기가 훑으니 조금 진정된다. 큰 호흡으로 몇 번 더 숨을 들이쉬니 담 넘어 세상이 보인다. 힘겹게 오르며 뱉은 투덜거림은 어느새 사라지고 ‘와!’ 탄성이 차오른다.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 풍경은 알프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농담이 다른 옅은 황토색 지붕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다. 도시 주변으로 큰 강이 흐른다. 스위스에서 가장 긴 291㎞ 아레강(Aare River)이다. 알프스 빙하가 녹아내린 물줄기가 튠 호수를 지나 베른을 U자 형태로 감싼다. 강을 따라 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몇 시간 전에 있었던 베른의 높은 지역, 베르네제 오버란드의 산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다. 오래된 시계탑과 성당, 옛 거리를 걸으며 보던 풍경으로부터 잠시 비켜서 있던 알프스가 다시 시야에 담긴다.
베른이라는 도시 이름은 곰(bear)에서 왔다. 12세기 곰 사냥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며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곰은 베른의 상징 동물이며 실제 곰이 살고 있다.
종탑에서 내려와 구시가지를 걷는다. 아레강 끝자락 다리에 다다르니 곰이 보인다. 다리 밑 강변, 곰이 인사를 전한다. 이곳이 ‘베른’입니다.

박윤정 여행가, 민트투어 대표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