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100세 시대, '심장의 문' 대동맥판막 협착증과 심부전

이순용 2021. 11. 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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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처음 외래에서 호흡곤란이 심한 환자를 뵌 건 환자 분이 한국 나이로 83세 때였다. 자녀와 함께 내원한 환자는 밖에서 들어도 쌕쌕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고, 폐음은 매우 거칠었다. 수축기 심잡음도 심하게 있어서 심부전과 동반된 판막질환 그리고 폐부종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아마 연세가 많아서 자식들 부담 안 주시려고 늦게 오셨을 거라 추측하며, 입원도 분명히 거부하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외래 밖에서는 자녀로 보이는 보호자가 환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자에게 왜 이제야 이야기하셨느냐며 한차례 실랑이를 하고 걱정되는 눈빛으로 진료실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렇지만 체격도 꽤 좋으셨고, 근육량도 좋은 편이라 치료를 잘 받는다면 오래 잘 사실 것으로 예상돼 치료에 자신이 있었다. 연세가 있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환자분 귀에 가까이 대고 “할머님, 숨 많이 차셨죠? 어제도 못 주무신 거 아니세요? 왜 이제 오셨어요? 며칠만 입원해서 숨 안 차게 해 드릴 게요. 입원해도 괜찮으시죠?” 귀가 잘 안 들리시는 환자분을 위해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설명하던 내가 편하셨는지 한 손으로는 손사래를 치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과 목을 잡으면서 “나이도 많은데 뭐해. 자식들 돈이나 쓰고. 병원 와서 낫는 것도 아닌데, 더 살아서 뭐하나 싶어 참았는데 너무 숨차. 아이고 너무 힘들어. 나 좀 살려주구려” 솔직히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시는 환자를 입원시키고, 우선 폐 부종을 없애는 치료를 하고 혈압 조절을 하면서 호흡곤란을 완화시켰다.

환자는 혈압에 의한 이완기 심부전과 동반된 폐 부종 그리고 판막질환이 있었지만 다행히 중등도의 대동맥판막협착증으로 우선 약물 치료만 하면서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며칠 입원을 하면서 호흡곤란이 호전된 환자는 외래에서 “이제는 살 것 같다”며, “오래 살고 싶다”고 이야기 하시며,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보호자인 자녀도 병원에 올 때 마다 어머니가 즐거워하시고, 외래 때 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귀에 대고 불편한 점이 없는지 큰 목소리로 자세히 물어보고 늘 웃어 주는 나를 보면서 친 딸 보다 더 잘해주는 것 같아 늘 고마우셨다고 한다.

5년 정도 환자 진료를 하다가 해외에 연수를 가게 되어 2년 정도 뵙질 못했고, 이후 병원에 돌아와서 외래를 보고 있는데 환자분이 또다시 쌕쌕 소리를 내며, 보호자와 방문했다. “아이고, 과장님 왜 이제야 오셨어. 나 숨넘어가. 너무 숨차” 양쪽 다리가 붓고 폐 부종이 다시 생긴 환자는 이번에는 대동맥판막협착증이 심한 정도로 진행하면서 심부전이 악화됐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제 할머님은 한국 나이로 90세가 되었고, 심한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수술이나 시술하지 않으면 호전될 수 없는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그리고 보호자와 충분히 논의를 하고, 병원 내에서 다학제 협진을 시행했다.

대동맥판막협착은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피가 유출되는 부위에 있는 판막인 대동맥판막이 좌심실이 수축할 때 잘 열리지 않는 질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동맥판막협착은 선천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어릴 적에 류마티스열을 앓으면서 판막 주변에 염증이 발생하고, 협착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생활 수준 향상에 따라 감염성질환이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증가해 이에 따라 현재는 퇴행성 변화에 의한 판막질환이 가장 흔한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대동맥판막협착의 정도는 크게 경한 정도, 중등도, 심한 정도로 나누게 되고, 증상은 정도에 따라 다르다.

협착의 정도가 중등도 이하라면, 증상을 느끼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협착의 정도가 중증이더라도 3분의 1 정도의 환자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협착의 정도가 더 커지면 흉통, 실신,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예후가 급격히 나빠지게 되어 이 경우에 수술하지 않으면 대부분 2년에서 5년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꺼워지고 경직된 판막 엽을 개선해 주는 약물은 현재까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대동맥판막 협착은 대부분 손상된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 판막을 삽입하는 인공판막치환술로 치료해야만 한다. 판막 치환을 위해서는 심장을 여는 개심술을 시행할 수 있고, 수술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수술적 치료인 경피적대동맥판막삽입술 (TAVI or TAVR)를 시행할 수 있다. 대퇴동맥을 천자하여 카테터를 대동맥판에 접근하여 조직판막을 삽입하는 시술로 가슴을 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성공적으로 많은 케이스들이 시행되고 있다.

환자가 83세 정도였을 때는 중등도의 대동맥판막협착증이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협착증이 진행됐고, 뚜렷하게 협착증을 막을 만한 약이 없기 때문에 중증으로 진행했던 케이스다. 1년 정도는 증상이 없었으나 내원 당시에는 심한 증상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경우다. 사실 연세가 많기 때문에 경피적대동맥판막삽입술도 가능하지만 판막 주변으로 너무 심한 석회화가 동반돼 있었고, 전신 상태는 심장을 여는 개심술을 충분히 견딜만하다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병원의 심장 판막팀과 긴밀한 협의 과정을 거친 후, 수술적 요법으로 심장 판막치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환자는 90세의 나이에 개심술을 잘 견디고, 수술 당일부터 깨셔서 말씀도 하시고. 다음날부터 주변에 관들이 있었음에도 움직임도 가능하였다. 또한, 수술 전 검사에서 시행하였던 혈액 검사에서 빈혈이 있어 위내시경을 시행하였고, 조기 위암이 발견돼 수술 후 내시경적 절제를 통해 암으로 인해 받을 수 있었을 고통도 미리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집에 돌아가 만나게 된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은 어머님이 저렇게 혈색이 좋으시고, 다리 부종도 빠져 정말 예쁜 발이 보인다며 기뻐하시며 감사의 편지를 보내 주셨다. 이제 손자, 손녀를 비롯한 가족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환자는 100세까지 심장은 튼튼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이제 외래에서 80세, 90세 환자분들을 자주 뵙게 된다. 90세에 처음 심한 심부전으로 진단돼 중환자실에서 며칠 계시고, 치료받으셨던 다른 환자분도 이제는 97세가 되었지만 호흡곤란 없이 약물을 복용하면서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단순하게 숫자적인 나이로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받지 않고 호흡곤란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람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나이가 많아서 이제는 그냥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는 환자분들 중에 정말 삶이 끝나는 시점에 세상을 뜨고 싶어 하는 환자는 보지 못했다.

두렵다고 수술을 미루고. 가족들 부담 안 주겠다고 늦게 내원하는 환자분들은 오히려 나중에 병원비도 더 많이 들고, 뒤늦은 수술로 주치의인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보다 의학은 더 많이 발전하였고, 두려워하지 말고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것이 추후 비용 면에서도 그렇고,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점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했던 믿음으로 90세 라는 연세임에도 수술을 결정하시고. 완쾌됨은 물론 암까지 발견하여 치료한 환자가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은 마음이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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