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로 읽는 과학] '바다의 대식가' 고래, 생태계 영향력도 그만큼 커졌다

조승한 기자 2021. 11.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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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제공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3일 이번주 표지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 섬 인근에서 혹등고래가 돌진하며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실었다. 다 크면 몸길이 16m, 무게 30t에 달하는 혹등고래는 한 번의 돌진으로도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는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먹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혹등고래나 대왕고래 같은 수염고랫과의 대형 고래들이 기존 과학자들이 추정한 것보다 매년 평균 3배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을 먹고 배설물을 흩뿌려 영양소를 바다 표면에 다시 공급하는 역할도 과소평가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튜 사보카 스탠퍼드대 홉킨스해양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이같은 연구결과를 3일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래 먹이량의 비밀을 풀기 위해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대서양과 태평양, 남극해에서 서식하는 고래 7종 321마리의 데이터를 모았다. 고래 등에 카메라와 마이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가속도계를 갖춘 태그를 부착해 고래 움직임을 추적했다. 고래 105마리는 드론으로 촬영해 몸길이 변화를 토대로 체질량과 먹이를 먹는 과정에서 여과한 물의 양을 추정했다. 고래 근처에서 음파 장치를 활용해 크릴새우와 같은 고래 주식의 밀도를 측정해 고래가 얼마나 먹게 되는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고래들은 기존 추정치보다 3배 많은 양의 먹이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태평양 동부 대왕고래는 하루에 16t의 크릴새우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대서양의 참고래는 매일 약 5t의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었다. 2008년 연구에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부터 남쪽 멕시코까지 뻗어 있는 캘리포니아 해류 생태계에 사는 모든 고래들이 총 200만 t의 크릴새우, 물고기, 동물성 플랑크톤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번 연구 분석결과 대왕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개체군별로 각각 200만 t의 식량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래가 먹이를 더 많이 섭취하는 만큼 고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고래가 대변 형태로 재순환시키는 철분의 양을 분석한 결과 남극해 기준 고래 한 마리가 1200t의 철을 재공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분은 질소나 인과 달리 염분에 없는 영양소다. 철분이 있어야 식물성 플랑크톤이 빠르게 번식할 수 있다. 고래 대변 속 철분은 남극 해수의 철분 농도의 약 1000만 배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포경이 20세기 본격적으로 이뤄지며 남극해 주변에서 200~300만 마리의 고래를 잡아 없애기 전 고래들이 남극 생태계에 미친 영향도 분석했다. 그 결과 남극해의 고래들은 1900년대 초반 연간 약 4억 3000만 t의 크릴새우를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늘날 남극해 전체 크릴 새우량의 2배이다. 당시 고래들은 현재 고래보다 10배 많은 1만 2000t의 철을 남극해에 재공급한 것으로 예상된다.

고래들이 크릴 새우를 소비하고 다시 해양에 영양을 공급하면서 과거에는 크릴새우도 많이 생겨나는 역동적인 생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크릴새우의 포식자인 고래가 사라진 이후 크릴새우 개체 수도 줄어드는 ‘크릴의 역설’의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사보카 박사후연구원은 “고래는 이동식 크릴새우 가공 공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보잉 737 비행기 크기의 동물이 철이 부족한 곳에 생산성을 뿌리면 바다는 이 비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경은 기후변화에도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고래가 재분배하는 영양분으로 식물성 플랑크톤이 늘며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포경 이전의 고래 개체수는 남극 해양 생산성은 11% 늘리고 탄소는 2억 1500만 t을 저감하는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했다. 사보카 박사후연구원은 “고래가 생산성과 탄소 제거에 기여하는 것이 전체 대륙의 삼림 생태계와 동등한 수준”이라며 “그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고래 개체수 회복을 돕는 게 잃어버린 생태계 기능을 복원하고 기후변화 대책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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